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아샘 Dec 27. 2021

B급 선생님

가르침의 의미는 수치화할 수 없다

'나도 왕년엔 말이야...'


학기 초, 학년 연구실에서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티타임을 가졌다. 자연스럽게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내가 A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지난 주말에는 뭐 하셨어요?"


"저는 저희 반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뷔페를 다녀왔어요."


"뷔페요? 학급 아이들이랑요?"


"네, 학급 회장 선거를 하기 전에, 새로 뽑힐 임원 아이들 3명을 뷔페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을 했거든요."


"설마, 선생님 사비로 사주신 거예요?"


"네, 사비로 사줬어요."


A 선생님이 쑥스럽다는 듯이 멋쩍게 웃었다. 선생님과 함께 뷔페에 가서 신이 났을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A 선생님은 황금 같은 휴일인 주말에 사비까지 들여가며 아이들을 챙겼다는 건가?'


A 선생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왕년엔 그랬었는데... '


발령을 받고 처음 몇 년 간은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많이 했다. 아이들과 나눠먹으려고 종종 집 앞 마트에 들러서 사비로 과일과 과자 등을 구입했다. 빼빼로데이를 앞두고는 빼빼로를 사서, 우리 반 모두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현장 학습을 가기 전날, 들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사비로 간식을 넉넉히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간식들을 아이들이 기쁘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아이가 있으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을 썼다. 중간에 표정이 좋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급식 시간에는 한 명 한 명의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학교 안에서도, 퇴근 후에도 아이들 생각을 하며 마음을 쏟았다.


시간이 흘러, 그 해 학기말이 되었다. 매년 학기 말이 되면 모든 학교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다면 평가를 실시한다. 학교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교사들을 S, A, B 세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다. 상대 평가 방식으로, 30%, 50%, 20%의 비율로 등급을 부여했다. 각 교사에게 매년 등급을 매긴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등급에 따라 성과급까지 차등 지급된다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학기말이 되면 학교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나는 이전까지는 항상 중간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 S 등급은 대부분 부장 교사가 받았기에, 평교사인 나는 A등급을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B 등급을 받으면 S 등급을 받은 사람보다 250여만 원가량 성과급을 덜 받았다. 성과급을 조금 받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B 등급을 받으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해,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교직 생활 처음으로 B 등급을 받게 된 것이다. 등급 확인을 잘 못 한 것인지 몇 번이고 확인을 했지만, 내가 최하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1년간 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을 위해서 일과시간 후에도 시간을 썼던 일, 사비를 털어가며 간식을 사주고 마음을 쏟았던 일이 떠올라서 속상했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무엇보다도 내가 학교 내에서 하위 20퍼센트의 교사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평가 기준을 다시 살펴봤다. 주당 몇 시간 수업을 했는가, 아이들을 데리고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아 왔는가, 공문을 몇 건이나 작성했는가, 연수를 몇 시간 들었는가 등 수치화할 수 있는 것들이 평가 기준이었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말 한 번 더 걸어주는 것, 따돌림당하는 아이를 위로하고 갈등을 해결해 주는 것, 수업 시간에 의미 있는 수업 활동을 하는 것 등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은 애초에 평가 기준이 아니었다.


한동안 멍했다. 그 후로 아이들 앞에 설 때면, 내가 최하 등급인 B 등급 교사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마트에서 파는 고기에 등급이 찍혀 있는 것처럼, 내 몸에도 B 등급 교사라는 도장이 찍혀있는 것만 같았다.


'굳이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또 학교를 위해서 열심히 마음을 쏟아가며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래 봐야 B 등급 교사인걸?'


아이들에게 마음을 더 쏟으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최하 등급으로 평가받은 교사니까, 딱 그만큼만 일하면 될 일이었다. 그 후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행동보다는, 평가에서 점수가 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썼다. 업무 관련 공문을 하나라도 더 작성하고, 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상을 받아 오려고 애썼다. 그렇게 B 등급 교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과거의 나처럼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았던 옛날 생각이 났다.


'나도 왕년에는 그랬는데... '


그러고는 속으로 혼자 속삭였다.


'선생님 그런 행동은 교사 평가에 반영이 안 돼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작 다면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으려고,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건가?'


물론 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고, 성과급도 많이 받는다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늦은 나이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가며 교직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 고작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어떤 평가 결과를 받는가와 무관하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는 일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년에는 나도 그랬어..."


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왕년에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은, 현재에는 그런 행동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왕년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 아닐까?


'당신이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내 나이가 되면 당신 생각도 달라질걸요?'


이런 생각으로 후배나 동료가 가진 아이들을 향한 열정을 평가 절하할 때가 있었다. 사실 그건, 내가 그들처럼 살지 못해서 부끄러운 마음에 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우리 안에 기억나는 선생님은 화려한 수업 스킬로 학생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던 선생님이 아니다. 성적 문제로 고민할 때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면서 공부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을 하면서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데 있다고 알려줬던 선생님. 내 삶의 가능성과 기대를 진심으로 알려준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학생들의 가슴에 남는다.... (중략)... 교사의 진짜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들의 마음에 다가서려고 하는 끈기에 있다.

-김태현, <교사의 시선>, 교육과 실천


교사의 노력과 헌신을 수치화해서 평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현직에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과 또 많은 교원단체에서는 현재의 교사 평가 제도를 없애거나,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당장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묵묵히 마음을 쏟는 일이 아닐까? 그 헌신과 노력이 평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 S 등급을 받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교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계획대로만 살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