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모진 시련을 다 이겨낸 네가 고마워!!
그때 너는 10살, 초등학교 4학년, 나는 36살. 지방에서 서울까지 골육종암이라는 듣지도 못한 병으로 치료하러 다녔지. 보름씩 병원에 입원하며 8차까지 항암주사를 맞았지.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 시절은 전쟁과도 같은 나날이었어. 지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때 아빠는 타지에서 직장일로 주말에만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모든 것을 홀로 해결했지.
나는 너를 차 뒤에 태우고, 입원하러 갈 때면 트렁크와 가방을 5~6개씩 챙겨서 먹을 것은 또 직접 해 먹이기도 했었지. 병원 가서 2주 정도 있다 퇴원하거나 경과가 안 좋으면 회복할 때까지 퇴원을 못하고 병원에서 암과 사투를 벌이던 시절, 집에 오면 또 거의 죽다시피 했던 너...
그리고 퇴원하고 가서도 근처 병원에 가서 적혈구와 백혈구 수치를 보고하고 또 언제 입원하러 들어갈지 병원에서 입원하라는 승낙을 받고 또 입원하고를 8번이나 했었지.
30년 전에는 암에 걸리면 다 죽는 병이라 생각했지. 삶이 외나무다리 같이 불안했어.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아 집에 와서 예뻤던 너의 긴 머리가 힘없이 빠지는 것을 지켜보던 우리는 울지도 못하고 웃을 수도 없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처음 당하는 일이라 뭐라 말도 못 하고 충격에 빠졌지. 한꺼번에 그냥 힘없이 쑥 하고 뽑히듯 빠지는 긴 머리카락...
1차 주사 맞을 때가 겨울이었는데 예쁜 털모자 쓸 때면 앞머리가 있는 게 예뻐서 밀지 말고 그냥 앞머리는 남겨두자 했었지. 그 모든 과정을 마치기까지 왜 주치의가 "갈길이 멉니다."라고 말했는지, 나중에 알았지...
네가 제일 고마웠던 건, 아침에 의사가 회진을 할 때 엄마가 "이 많은 환자들 중에 의사는 어떤 환자에게 더 잘해주고 싶을까?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일까? 아니면 의사가 왔을 때 그제야 눈 비비고 일어나는 환자일까?"라고 네게 묻자, 너는 그 말을 알아듣고, 예쁘게 세수하고 앞머리 단장하고 앉아서 의사 선생님을 대기하고 앉아 있던 너의 행동이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 참 예쁜 짓을 많이 했지.
그렇게 진료해 주시던 의사 선생님이 네 결혼식에 오셔서 주례를 서주신 것은 정말 기적인 일이었어. 엄마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가족의 의미를 느꼈던 때도 그때였어. 그런 대소사는 정말 축제였지. 결혼은 축복이야.
그 고난을 견디고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네가 장하고 고마워!! 늘 챙겨주는 사위도 당연히 고맙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