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하고 변함없는 따뜻한 심성으로 버텨줘서
장녀는 하늘에서 낸다는 말이 있지.
우리나라는 특별히 큰딸에 대한 기대심리가 많지. 못난 엄마 때문에 고생하게 해서 미안해.
너에게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꼭 뒤따라 와.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온갖 아픔을 함께 하고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동생의 암투병으로 힘들어서 엄마가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었고, 지나고 보니 동생만 챙긴 것도 미안했고, 혼자 집에 있으라고 했던 것도 미안해.
어릴 때부터 동생을 살뜰히 챙겼던 너는 동생이 10살에 암에 걸리자 혹여 암으로 잘못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었지. 아빠는 회사원으로 주말부부라 타지에 계셨으니, 너 홀로 얼마나 외롭고 무섭고 두려웠을까. 결국 초교 졸업식도 참석 못 하고 말았지. 아무도 데리고 갈 사람도 없고.
그렇게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낸 너는 중고교 시절에도 여러 가지 시련이 많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밖에 모르는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엄마가 이혼을 하고 너희 둘을 데리고 재혼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고 그땐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또 남자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모르는 철없는 엄마였어.
너희들을 데리고 그 남자와 1년 반을 살다가 갑자기 너희들과 엄마가 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엄마가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몰랐는지 참으로 답답했던 것 같아.
네가 대학입학 하러 다시 엄마 곁으로 와서 살 때,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지...
멍든 얼굴로 정형외과 가다가 마주쳤을 때 기억나지? 놀란 네가 엄마에게 했던 말...
"엄마!! 왜 이러면서 살아요. 이제 그만 나오면 안 돼요?" 사실 그 사람은 내가 배신하면 너희들에게 아무도 모르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서 나올 수가 없었지.
결국 그 남자의 아이가 초등학교 때 만났는데 고3수능 치고 며칠 안된 어느 날, 엄마 생일이었는데도 맞아서 병원에 입원했었고, 그 이후 더 이상 희생하지 않아도 복수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지. 내가 그 남자의 아이를 위해 거의 6년 반을 넘게 살았으니까.
그리고, 술 취해 들어오면 노심초사했던 나는 기죽은 여자였고, 죄인 같은 심정이고, 볼모인 듯했었어. 가정폭력 상담을 받았고, 그 피 묻은 이불을 갖고 나와 우린 다시 만나 쉼터로 입소하고, 일주일이 지날 무렵 굳이 네가 그 쉼터에서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지. 너는 대학 졸업 후였으니까. 정말 파란만장했구나.
그 뒤 엄마는 공부하기로 결심을 하였지.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어. 결국은 나의 삶의 동기부여가 되었지. 가정폭력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배우자의 만남의 원리가 너무 궁금했던 거였어.
처음 사회복지전공으로 대학 공부를 하면서 직장생활을 했었고, 나중에 네게도 공부를 권했지. 너는 다행히도 공부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아 같이 공부하게 되었지. 그러고 나서 가정폭력 상담소에 같이 다니게 되었지.
엄마 입장에서야 그런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돕겠다고 가정폭력상담소에 49세의 나이에 입사한 거였지만, 사실 심약했던 너에게 경제적 생활이 어렵다고 그런 직장을 권한 건 2차 가해를 한 듯하여 그것도 너무 무지했던 것 같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
오죽하면 네가 엄마가 되고 나서 '아이가 중학교 갈 때까지는 일하지 않고 아이 곁에 있어 주겠다.'라고 말했던 것을 보니, 너 홀로 얼마나 상처를 받았으면 그리 결정하였을지 이해가 돼. 그건 네가 잘하는 것 같아.
너 자신이나 아이를 위해서도 해줄 수 있다면 학교 갔다 왔을 때 엄마가 맞이해 주는 게 사실 최고지. 너의 그런 판단 존중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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