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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부와 쉐프 그 사이에서 실수연발

나는 정체성에 문제가 있나?

 일을 못 했던 탓일까? 아니면 사장이 보는데서 판매용 초밥을 만들다가 주워 먹어서 일까? 나는 매일 같이 사장에게 찍혔다. '이렇게 일할 거면 당장이라도 집으로 가'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자르지는 않았다. 다른 선배 동료들은 늘 하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왜인지 예외일 것 같았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비정규직의 서러움이 이런 것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스템은  이러했다. 주방은 별도로 외각에 있고, 지금은 3개가 넘는 샾이 있지만, 당시에는 2개의 샵으로 만든 초밥 도시락과 음식들을 배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점심 장사 이전에 모든 음식을 만들어야 했고, 주문이 바쁜 날은 마감 시간과 관계없이 바빴다. 나는 그런 때에 실수를 자주 했고, 사장은 나를 항상 혼냈다. 욕먹는 건  관계없지만 자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다른 주방 쉐프들은 주방일만 하고 하루의 일이 끝났지만, 나는 매장 청소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장의 말에 'No'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전, 오후, 저녁에 일하는 스케줄이 나왔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신문을 팔았다. 


 사장에게 혼나서 인지, 고등학교 때의 혹은 군대의 습관이 남아 있었던 탓인지 어떠한 의무감에 나는 매일 가장 먼저 주방에 도착했다. 물론 '짬' 때문에 미리 움직이는 것도 있지만, 그냥 자존심에 누군가 나보다 먼저 온다는 그것 자체로 마음이 불편했다. 도착해서도 열쇠를 든 사람이 오기까지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그 10분이 나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그래 너 열심히 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라고. 


 아 그런데, 매장 청소를 하는 일에 30분이나 늦게 도착해버린 적이 있었다. 더블린은 이상하게 일요일이 장사가 안 되는 날이라  빨리 닫는데, 나는 자꾸 한국 마인드?를 가지고 일요일이 늦게 문 닫는 날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늦게 가버렸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이미 다른 직원이 사장에게 늦게 왔다고 문자까지 넣어 버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다른 여직원이 오히려 더 열심히 하는 모습에  미안해하면서, 자기가 변명해주겠다고, 사장에게 말해 준다고 하였다. 나는 그럴 필요 없고, 내가 늦었는데, 왜 본인이  미안해하느냐고 괜찮다고 했었다. 사실이니까. 이래도 저래도 결국엔 내가 늦은 거였다. 


 불같은 성격의 사장에게 내일 새벽부터 혼날게 뻔한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깨끗이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 이전에 매장 청소는 브라질리언이 했었는데, 개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국인으로 고용한 거였는데, 나는 실망감만 준 꼴이다. 그래서, 비장의 카드, 미싱질을 시작했다. 사단장님 이상 부대 방문할 때만 했었던 퐁퐁 미싱 혹은 왁스 미싱. 원래는 하루에 한 칸씩 점진적으로 할 계획이었지만, 이 판 사판이었다. 나도 도박을 걸어야 했다. 고개도 들지 않고 바닥을 큰 칫솔로 비볐다. 하얗게 다시 변하는 바닥처럼 내 마음도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평소 보다 20분 정도 늦게 매장을 마감하고, 나는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 보스, jay 야. 늦어서 미안해. 변명하지 않겠어. 시간을 잘 못 이해했어. 이건 온전히 내 잘못이야. 누구를 비판하지 않아. 너에게 그리고 너의 매장에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서 대신에 오늘 늦은 만큼, 나는 오늘 일한 돈을 받지 않을게. 이건 내 자존심이야. 나는 군인이었어. 약속은 내 인생 전부인데, 내가 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렇기 때문에 일했지만, 돈을 받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내일 아침에 청소 상태를 체크할 때 꼼꼼히 봐줬어면 해. 그리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연락해. 당장 달려와서 다시 해놓을게. 좋은 밤 보내 보스"


역시 사장은 읽고 답장을 안 했다. '시크한  놈'이라 혼잣말을 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사장이 나를 찾았다. '아 이런 신발... 나 이제  잘리는구나 진짜 백수구나' 싶었다.


  

"Jay, 어제 청소 네가 했지?"

 "응, 어제는 나였지..."

"정말 잘했어. 굿잡이야. 매일 매일 깨끗해. 이전에 브라질 애들이었는데, Wow~ 바닥 청소한 애가 너였구나"


하면서 다른 데로 가벼렸다. '아... 살았다.' 전화위복이라 그랬던가, 그 이후로 나는 욕을 덜 먹었다. 인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지는 임무가 많아졌다. 그래서 아마도 나를 이제는 신뢰하지 않나 싶었다. 청소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사장은 그날 일한 부분도 월급에서 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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