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래도 불안하다. 더 달라지자.

가게의 시스템 개선을 사장에게 제안했다.

 우리 초밥집 사장에게서 인정을 받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고용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수를 써야 했다. 두 가지를 고안했는데, 청소일에서 '다른 사람은 못 하는 나 만이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을 했다. 주방에서 초밥을 만들고, 저녁에는 매장 정리와 청소를 도와주는데, 매장 판매 현황과 그날 저녁의 재고를 볼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다. 나는 마케팅을 배웠지 않는가?' 귀찮던 마케팅 과제들과 팀 프로젝트에서 배운걸 실전에서 써먹어 보자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점수를 따야 한다.' 솔직히 알바 입장에서 많이 팔리면, 같은 시간에 많은 초밥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 자체는 훨씬  번거로워진다. 아마도 다른 알바생들이나 매니저에게 말했다면  반대했을 일일지도 모른다. 주문량이 많다고 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생겨나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이디어는 이랬다.


1. 우리 가게는 당일 아침에 만든 초밥만 판매한다. 그래서, 남는 재고는 무조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너무 아까웠다. 마감에 가까워지는 늦은 저녁시간 때에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그냥 매장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초밥이지만, 아침에 먹는 거랑 저녁에 먹는 거는 신선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가격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저녁에 사는 사람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 그래서, 재고 감소와 저녁 손님을 위해서, 어차피 버리는 거 싸게라도 팔아버리면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가? 그래서 마감 한 시간 전에 가격 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2. 일반 서양인들은 초밥 먹는 법을 모른다. 나도 회랑 초밥라면 한국에서 죽자고 먹었지만, 제대로 먹는 법을 몰랐다. 어떻게 먹어야 더 맛있는지, 여러 초밥이 있으면 어떤 순서로 먹어야 하는지 최근에 유튜브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런데, 한국인인데, 아시아인인데, 심시어 초밥도 자주 먹었는데 나도 몰랐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자기들이 초밥을 먹지만, 대충 TV에서 본  것처럼 따라 하는 수준에서 초밥을 먹는다는 걸 알았다.  심지어, 초밥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친구들도 있으니 제대로 초밥 먹는 법 혹은 도시락을 제대로 즐기는  법?이라는 간단한 설명 정도는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이러한 설명을 매장에 해놓을 필요가 있었고, 손님도 알 필요가 있었다. ' Kokoro에서 초밥 제대로 먹는 법을 배웠다면 고객은 평생 동안 여기서 배운 대로 초밥을 먹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생 동안  초밥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생애 고객' 혹은 '충성고객'이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초밥 제대로 먹는 법 가르치기'를 제안했다.  


3. 한 손님이 여러 초밥을 사게 만들어야 한다. 1유로짜리 한 조각 초밥에서부터 12유로짜리 초밥 도시락까지 메뉴별 가격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한 손님이 여러 개를 사도록 유도하는 게 맞는데, 아무런 그런 가격정책이 없었다. 그냥 각 메뉴별로 사버리게 내버려둔 셈이었다. 심지어, 여러 개를 산 손님에게 간장이나 잡다구리 한 그런 것에도 돈을 받았다.  여러 개를 사도록 유인해도 모자랄 판에, 전혀 많이 사고 싶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패키지 가격이나 세트 할인'을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우리 사장은 조금 무관심했다. 직접  이야기할 실력은 안되어서 사장에게 아이디어가 있으니 메일 주소로 보내준다고 영어로 작문해서 보내 주었다. 시간만 많았다면, PPT로 만들어서, 왜 그래야 하느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작성해서 보내줬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사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두 곳의 매장에 일부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아, 물론 나에게 고맙다는 말은 안 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적용했다는 말도 안 했다. 그냥 다음날부터 매장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도 만족했다. 조금은 이제 사장에게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고, 조금은 더 고용이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군대에서도 인정받고 싶어서 안달 났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아직 남아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칭찬을 먹고사는 동물인가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당시에 아직 다  말하지 않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 어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다시 실수로 인해서 퇴사? 당할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아끼기로 했었다.


 마케팅이라는 거 별거 아니다 생각한다. 안 잘리기 위한 미생들의 결과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나름 진지했다. 마케팅 이론에서 말하는, 진정으로 고객을  생각하기보다 어쩌면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결과물 중에 일부만이 시장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 의외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주방에서의 일이 자리를 잡아 가고, 청소일이 쉬워 질 때 즘에, 신문팔이일을 언제 그만 둘까? 하는 찰나에 자괴감이 들었다. 아프기도 했었다. 몸살이라는 게 났고, 아팠지만 아프다  말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일상처럼 손과 옷에는 연어 냄새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베인 채로 집에 가는 날, 하필이면 비가 왔다. 


 아프고, 외로웠고, 힘들었다. 거기다 비까지 추적이 내렸다. 뭔가가 나를 '툭'하고만 건드리면 눈에서 뭔가가  쏟아질 것 같은 때에, 교회 지붕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구걸하는 노숙자를 보았다. 그 모습이 나랑 왠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 의식인 듯 무의식인 듯 옆에 앉았다. 그게 나와 노숙자의 첫 만남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청소부와 쉐프 그 사이에서 실수연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