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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르는 노숙자를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는 그에게 했다.

 외로운 처지, 그게 가장 큰 동질감이자 어떠한 동료애였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전 처음으로 노숙자와 말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진주 중앙시장에 자주 갔었는데 거기에는 꾀 유명한 노숙자이자 걸인이 있었다. 다리가 없는 듯이, 고무 장판으로 다리를 가리고 상체를 어딘가에 싣고서  시장이리저리를 구걸하는 아저씨였다. 어릴 땐 그냥 불쌍한 아저씨다 싶어, 500원, 천 원씩 주곤 했는데, 고등학교인가? 그 아저씨가 시장에서도 한참 먼 골목에서 정상적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 이후로 걸인이나 노숙자들을 경멸했다. 


 그 말이 정확할 것이다. 미치도록 싫었고, 그냥 게으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내가 본 것이 전부라 믿었다. 그런 내가 노숙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말 못 할 절박함이 있었다. 


인도계 노숙인이 었고, 원래는 파란색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하늘색의 침낭을 어깨에 두른 채, 군데군데 손때 가 묻은 종이 컵을 앞에 두고, 교회 지붕 처마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있었다. 나이는 40대인 듯 50대인 듯해 보였고, 볼에는 수염이 삐죽 히 나있었다. 눈에는 많은 실핏줄이 있었다는 것. 그런 것 정도 외에는 기억이 많이 나지 않는다. 


아저씨는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았다. 아마도 현지 노숙자들에 비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대화는 가능했다. 왜 비를 맞고 있느냐 처음 물었고, 나는 안으로 들어가라 그랬다. 그러자 아저씨는 괜찮다고 하면서 종이컵을 들었다 놓았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냥 가족 이야기, 한국에서 아일랜드 오게 된 이야기, 지금 하는 일들,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마도 당시에 동기들의 취업 소식들이 들려오는 시즌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정장입고 입사 연수를 받는 모습과, 길에서 신문 파는 내 모습이 너무도 달랐고, 사실 많이 부러웠다. 그래서 더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런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아저씨가 손을 잡아주었다. 생각보다 행색에 비해서 깨끗한 손, 그렇게 보였는 지도 모른다. 그 차가운 손이 역설적으로 너무 따뜻했다. 그 앞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소리도 흐느낌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게 외국에서 처음 흘린 눈물이었다.


그것이 어떤 위로가 되었을까? 며칠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기로 결정은 되었는데 어떤 여행을 할지 생각해 보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냥 최대한 많은 국가와 도시를 돌고, '세계일주'라는 타이틀을 한, 재미 난 영상을  만들자,라는 생각이 전부였었다. 사실 그런 건 재미가 없었다. 보이기 위한 여행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지루 했다. 거기에 더해서, 한 때 '꿈' 여행 붐 같은 게 있었는데, 그런 것도 하고 싶었다. 왠지 있어 보였고, 각 나라 사람들의 꿈을 묻고, 세계지도를 꾸미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님께 자문도 구하고 했었는데 역시 크게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뜻, 몇일이 더 지나고 전에 만났던 노숙자 아저씨가 생각이 났고, 그들을 더 만나보고 싶었다. '아, 사람을 만나자 그리고 가능하면 많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자'라는 흥미가 생겼고, 당장에 결정해 버렸다. 세상의 바닥에서 꼭대기 까지 만나보자. 그래서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만나는 나만의 의무이자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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