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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노숙자 인터뷰, 쉐프 피터

기억에 남는 따뜻한 손 

 가을이 다가오던 날들 중  하루는 더블린에서 제일 번화가 중 하나인 파넬스트릿으로 갔다. 가장 큰 쇼핑몰이 두 곳이나 붙어 있어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라 생각했다. 처음 보이는 두 명에게 간단하게 말을 걸고, 시간 좀 낼 수 있냐고 하니까? 'for  what'이라고 더럭 화를 내 면서 말하는 것이다. 사실 너무 크게 당황해버렸다. 그런 반응 자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노숙인에게 꿈을 묻고 앞으로 잘해라, 혹은 어떻게 살아왔느냐 물어보는 게 참으로 예민한 문제여서 말 꺼내기가 쉽지 않은데, 상처 주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 내가 도리어 당황해 버렸다. 

그렇게, 꿈이니,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보고 싶다고 하니, 절대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두 명을 보내버렸다. 아, 도통 쉽지가 않았다. 보통 하루에 2~3명 물어보면, 한번 정도만 퇴짜를 맞는데 오늘은 연속으로 두 번이나 맞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거리를 걸어보니 다른 노숙인이 앉아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옆에 앉아버렸다. 말도 없이 허락도 없이 그 옆에 앉고 난 이후에야 말을 걸었다. "춥지 않아?" 자꾸 추워져서 엄청 싫다고 했다. 나도 강력하게 동의했다. 


 30대 후반이라고 말한 이 친구는 'Peter'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체코 프라하 출신으로 아일랜드로 온지는 1년 정도 됐고, 프라하에서는 잘 나가는 요리사였다고 한다. 코이의 법칙이라는 꿈 동영상을 보여주기 전에, 내 인생 이야기 부터했다. 군대 이야기 꿈을 잃어버린 이야기, 힘들었고 외로웠던 일들 이야기하니 "힘내"란다. 고마웠다. 솔직하게도 정말 고마웠다. 그들의 위로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동영상을 보여주니 잘 만들었다고 했다.  또다시  아저씨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너 잘 나가는 요리 사였면서? 그런데 왜 아일랜드 와서 구걸하는 거야?"

 "예전에 부모님이 프라하에서 사업을 크게 하면서, 돈을 빌려다 썼어 그렇게 무리하게 사업을 했지, 집이랑 뭐 있는 거 담보 잡히고 했는데 결국엔 어쩌다가 망해버렸어.  그 후로 또 부모님이 차 사고로 두 분다 한 번에 돌아가셨어. 문제는 나도 요리사로 일 하다가 부모님 사업에 같이 뛰어 들었다가 나도 망해 버린 거지. 그 빚을 내가 다 책임 저야해서  아일랜드로 온 거야."


  어떻게 보면 거리로 나온다는 게 참 한 순간 일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피터의 꿈은 " 캐나다 밴쿠버에 집을 살 돈을 모아서 집을 사서 밴쿠버에서 사는 것" 이란다. 가보지는 않았는데, 밴쿠버에서 살면 행복할 거 같다고 밴쿠버를 선택했단다. 어쩌면 참 간단한 이유일 수도 있는데, 행복할 것 같으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복잡 할 필요도 간단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는게 꿈이라 생각한다.


 피터 아저씨가 말했다. '아일랜드에서 일자리 구하기가 참 힘들어'  듣자마자 보통 구걸하면 하루에 얼마 버냐고 물어보았다. 


 "하루에 많이 벌면 30유로, 보통 20유로 정도 받아.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거리에 나와 있어. 잠? 잠은  15유로짜리 호스텔이 있어. 15 유로면 조식도 주기 때문에 싼 편이야"라고 꽤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잠을 해결하고, 남는 돈으로 한 끼 정도  사 먹는다고 한다. 이번에 알게 된 게, 위치마다 노숙인들 수입이 다르다. 내게  거짓말한 것일 수 도있는데 피터 아저씨가  지난주에 인터뷰했던 친구들보다 많이 벌었다.  그리고 잠도 좋은데서 잔다.  심지어 갤럭시 핸드폰도 있다. 슬 적 봤는데 S3정도로 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 한 참하고 있는데, 사실 자기는 일을 구했다고 한다.  1 주일 전부터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 쉐프로 일한다고 한다. 아직 주급을 못 받아서 계속 거리에 있는 거라고 말하면서, 아마도 조만간 거리를 떠날 수도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본인은 기차 값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안 하는 시간에는 나올 거라고 말해주었다. 이제까지 인터뷰하면서 제일 기분이 좋았다. 바닥이라고 표현하면 그럴지 몰라도 최소한 길거리에서 자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렇게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피터는 이리저리 쳐다보기 바빴다. 뭘 그렇게 찾고 있느냐 물었다. 


"경찰이 오는가 안 오는가 보는 거야, 구걸을 하면 경찰서로 잡혀가는데, 외국인의 경우 추방되기도 해" 


 길에 앉아있는 건 되는데 구걸하면 안된다 했다. 그런데 사실 경찰들도 대부분 알고 넘어 간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창가? 와 같지 않나 싶다. 다 추방한다고 해봤자 더 음 성화될 뿐이고 더 나쁜 길로 빠지게 되지 않을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봤다. 


 불안한 눈빛 속에서 나는 오늘 희망을 보았다. 더 이상 경찰 눈치 보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면서 웃으며 사진 찍자고 했는데 결코 웃지 않았다. 왼쪽 윗니 전체가 없어서 이빨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다. 불과 1년 만에 다 썩은 거다. 참으로 애석했다. 어찌 보면 본인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는 일인데, 아일랜드로 기회를 찾아 왔지만 외국인에게 일자리를 주기란 쉽지 않았나 보다. 짧은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인터뷰를 마치며, 웃지 않는 피터 아저씨를 기억하기 위해서 마지막 악수를 하던 피터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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