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내가 도망친 나라 아일랜드

나는 미쳤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아직은 포기 못 한 것이 있었다. 취업!


 실은 어쩌면 나는 취업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꽤 좋은 스펙이었다. 국립대 중에 빠지는 학교는 아니었고, 자격증이나 어학성적이나 학점이나 감점이 되는 요소도 없었고, 다른 대외활동도 좋았고, 나는 장교 출신이었다. 이런저런 선배들의 조언과 연봉을 보면서 마지노선을 정하고 적성과 관계없이 경영지원이나 영업, 해외영업 분야에는 모조리 지원했다. 사람들은 그게 경험이라 말했고, 나도 그렇게 말했다. 임관과 동시에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부대일은 부대에 있을 때 끝내고, 숙소로 와서는 취업에 전념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동기들 중에서 나름 앞서 있었고, 동기들의 상담까지도 했다. 어디가 강의가 좋고, 뭐를 더 준비해야 하고, 자소서를 첨삭까지 해줬다. 당연한 결과였을까? 많은 곳에 합격했다. 아주 특출 난 것은 아니었지만, 승률이라는 게 나쁘지 않았다. 연봉만 보고 지원해서 였는지,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적성과 기호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여기 취업하면 후배들이  부러워할 거야, 동기들이  인정하겠지?'하는 생각의 알려지고 더 들어가기 힘든 회사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지난 상처들에 대한 복수심에 였을까? 그런 곳에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합격이라는 건 기분이 좋았다. 


 그중에 한 기업의 시험이었고, 나도 '그 친구들도' 언급한 기업이었고, 그곳에 합격하면 어떻게 할까?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는 사실 여행도 가고 싶은데 복수심에 취업을 꼭 해야 하나? '그냥 떠나자' 마음먹고 이대로 밤을 세며, 여행자들의 동영상을 보며 이상한 괴리감과 두근거림을 느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 셀 수 없을 만큼 수 만 가지 잡념에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 했다. 


 핑계였을까? 우연이였을까? 부대에 문제가 생겼고, 새벽에 부대에 슬쩍 들렀다가 도와주고는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그래도 심장은 잠들지 않았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방 전체를 울렸으니 말이다. 그러다 잠에 들어버렸고, 알람 소리를 듣지 못 했다. 안 들었는지도 모른다.


 해는 이미 떠 있었고, 전화 한 통이 울렸다. 이미 취업한 선배의 전화였다. 시험 치기 전에 얼굴이나 보자는 전화였다. 지금 일어났다고 하니, 일단 시험은 보라고 택시 타고 오라는 것이었다. 아 일단 합격은 하고 선택할 문제라 생각이 들었다. 또, 나는 반대로 움직였다. 결심은 가벼운 것이었고, 파주에서 택시기사에게 20만 원을 주며, 서울 상암동까지 총알로 가달라고 했다. 5분 차이로 입실 불가. 


 사실 허무했다. 차라리 쿨하게 안 갔으면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을 굳이 택시 타고 갔는데 시험조차 못 치르고, 삐죽 히 난 수염과 떡진 머리와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내 모습이 너무 처량했다. '나라는 존재 참 가볍구나'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기 위해서, 시험이  끝나자마자 모인 친구들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나는 남은 기업들 마저 포기하고 비행기 표를 검색했다 


그 들이 원했던 이 기업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고,  그때의 '늦잠'은 평행하던 마음의 저울에 1도의 기울임이었고, 한 순간에 와락 반대편으로 모든 것이  기울어졌다.  그렇게 취업의 문턱을 넘었지만 의미 없는 지원과 합격 그리고 늦잠의 조합으로 다시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왜 아일랜드로 갔을까? 


1차적으로 나는 도망친 것이다. 가장 빠르게, 가장 멀리 그리고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남은 곳이 유럽의 작은 섬 아일랜드라는 나라였고, 전역과 동시에 비싼 돈을 주고 비행기를 예매했다. 아마도 다른 이유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 기억한다. 호주나 미국, 캐나다 등 알려진 곳으로 간다면 너무 뻔한 워킹홀리데이 이야기가 될 것 같고, 내가  특별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뭐 그땐 그랬다. 


 내가 처음 가지고 시작했던 돈 1500만 원에도 사연이 있다. 퇴직금 400만 원, 그리고 마지막 달 월급 100만 원, 그리고 친구에게 빌린 돈 400만 원, 그리고 변액연금 보험을 해약하고 받은 돈 700만 원에서 학자금 100만 원을 갚고 남은 돈 1500만 원이다. 보험을 해지한 건 어쩌면 큰 실수 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원래 목적이라면 30년 납입을 목적으로 했고, 이건 죽어도 취업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내가 선택한 취업에 대한 '배수의 진'이었다. 30만 원씩 2년 넘게 납입을 했고, 내 유일한 저축 수단이자 취업에 대한 의지였다. 왜냐하면 단기에 해지를 하면, 원금에 손해가 가는 방식으로 설계된 보험이었고,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원금 200만 원이나 손해를 보면서도 나는 기여코 나가야 했다.  그렇게 내 배수진을 나는 건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과거는 이렇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