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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툴지 않았던 유럽의 시작

너무 서툴러서 서툴지 않았던 아일랜드에서의 시작

 작고 조용한 나라 아일랜드. 아무도 나를 모른다. 어떤 마음인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아무도 나를 모른다. 그래서 좋았다. 영어 스피킹 시험을 준비하고, 2년 동안 시험을 면접을 준비하며, 전화영어로 실력을 쌓은 탓에 제법 영어를 했다. 그래도 일하면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서는 학원에 등록해야 했다. 아일랜드에서 일하면서 여행자금을 더 모아서 세계일주라는 것을 해볼 생각이었다. 혹은 해외취업이라도 해버린다면 해외에서 살 생각까지도 있었다. 아무튼 꽤 희망적이었고 그렇게 순식간에 적응해 버렸다. 


 보통은 현지 유학원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는 일들을 혼자 해버렸다. 핸드폰을 개통하고 집을 알아보고 시내를 돌아다니고 뭐 그런 소소한 것들을 해버렸다.  나는 서툴지 않았다. 그래서 였을까? 너무 잘 놀았다. 매일 같이 외식을 했고, 돈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과 여행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간  혹사당한 청춘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나에게  방종이라는 것을 좀 주고 싶었다. 

 

 또 이상한 자신감 같은 게 있었다. 나는 다를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워홀러들과 유학생들 사이에서 일자리 구하는 게 참 어렵다 했다. 그런데 나는 다를 줄 알았다. 꽤 영어도 하고, 이미 한국의 기업들에서 합격소식을 받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식당이나 청소일 뭐 그런 것들 말고, 현지 대기업이나 적어도 사무직을 구할 것 같은 상상들을 했다. 마치 따지 않은 사과를 마당에 두고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사과들 중에서도 나는 아일랜드에서 구글에  취업할 줄 알았다. 뭐 그냥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알지 못할 자신감인지 안도감인지가 들어서 였을까? 마음 놓고 놀았다. 유럽의 클럽이 좋았고, 이른  오후부터 유쾌한 기네스 향이 팍팍 나는 아이리쉬 펍들이 좋았고, 친절한 듯 한 아일랜드 현지인 친구들과 학원에서 만난 인연들과 노는 게 너무 좋았다. 더블린에 있는 모든 클럽은 다 보려 했고, 모든 술은 다 먹고 싶었다. 사실 유로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10유로가 그냥 10유로로 다가왔지 1만 5천 원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낀다고 아껴먹고 쉐어룸도 쓰고 했지만, 가끔씩 논다고 놀았는데 상대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버릇이었는지 계산은 내가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처럼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았고,  동전을 받는 일들이 귀찮았다. 그런 귀찮음을 자랑처럼 말하고 다녔고, 카드만 쓰고 다녔다. 3개의 카드에 돈을 나눠서 들고 왔고, 돌아가면서 쓰다 보니 얼마를 썼는지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굳이 공인인증서를 로그인하며, 잔액을 하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아일랜드로 입국한지 두 달하고도 보름이 지나서 카드 사용이 멈췄다. 잔액부족. 그때서야 잔고를 확인했다. 3개의 통장 잔액의 합이 900원.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아... 당장 저녁에 뭐 먹지?' 그게 걱정이었다. 

 

 좋은 버릇이 있었다. 돈을 지갑에 넣지 않는 버릇이었는데, 가지고 온 옷들 전부를 뒤졌다. 동전들이 몇 개 나왔고, 마지막 장을 봤다. 3일은 버틸 수 있다. 그렇게 미뤘던 해외 구직을 나는 당장 했어야 했다. 직업소개소? 몇 곳을 돌았지만 해외 학위도 없고, 해외 취업 경험도 없는 나에게는 무급인턴 자리가 전부였다. 그게 아니라면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라고 했다. 구글은 나 혼자만의 꿈이었다.  


 그렇게 나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가, 하루 일하고 하루 돈을 받는 캐시 잡을 구했다. 그게 신문팔이였다. 한국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나는 아일랜드에서 하게 된 것이다. 잔액 900원에 나는 바뀌었다. '유학생'에서 나는 진짜 '여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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