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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등반 그리고 조난

살고 싶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이었을까? 기자 아저씨가 말해준 것은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었다. '명확한 인터뷰 대상의 설정의 부재와 그로 인한 인터뷰 대상에 대한 사전 학습의 부재 그리고 흥미롭지 않다'의 말들이었다. 바늘 한 땀 한 땀이 피부를 파고들듯 내 몸 어딘가가 아팠다. 너무 맞는 말이라, 일절의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부족함을 피부로 느끼고 나는 도를 닦는다는 느낌으로 알프스 산으로 향했다. 이런저런 고민과 함께 등산을 갈 계획일 하니 같이 등산하고 싶다는 동생이 연락이 왔고, 채영이랑 만나서,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교통비가 비싸 히치하이킹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래서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한 장소로 갔다. 2명이어서 잘 안될 것 같았지만 좋은 위치와 좋은 미소라면 안될게 없었다. 조금은 행운 정도는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한 번만에 베른에서 인터라켄으로 왔다. 원래는 중간에 내리는 것이었지만,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서 대화에 불이 붙자, 중간에 멈출 수 없었고, 결국에는 대화를 끝내기 위해서 네덜란드 친구는 우리를 인터라켄까지 데려다주었다.

 도착하자마자 투어리스트 인포에서 산행 루트를 간략히 정보를 모았다. 뭐 사전에 조사한 내용은 없었다. 스위스에, 인터라켄이라는 도시에 알프스 산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왔을 뿐이다. 알프스에 있는 수많은 등산 코스 중 우리는 아이거 트레일 코스를 타기로 했다. '2박 정도 머물 예정이라고 말하고, 제일 높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가능하면 걸어서 알프스 정상까지 가고 싶다'고 하니 일단 거기로 가보라고 한 코스였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배고픔에 정신이 팔려 바로 앞에 있는 마트로 달려갔다. 3일 치 식량을 샀다. 식빵, 소시지 종류별로, 물 1리터, 버터, 참치캔 두개 그리고 맥주 1캔을 샀다. 그리곤 바로 인터라켄 보다 더 산속 마을인 그린테발테로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운이 좋아 2번 만에 도착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관광 와서인지 동양인에 특별히 친절했다.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장님이 태워줬는데 시간이 되면 꼭 타라고 했지만 돈이 없었다.


 오후 2시 정도에 그린테발테까지 도착했다. 뭐 안 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자신감이 한참이나 붙었었다. 안전한 등반을 위해서 기차역에서 불필요한 짐을 뺐다. 작은 가방에, 속옷, 양말, 노트북을 뺐다. 그래도 무거웠다. 3일 치 식량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은  산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래도 거기에 만족했다. 노트북이 없으니 적어도 가방은 아무 데나 던져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마을에서 산행코스 시작까지도 한 시간 가까이를 걸어 올랐다. 길을 헤멘탓도 있었지만, 한참이나 가득 초원에 꽃들이 만개해서 하도 이뻤던 탓에 걷기보다는 사진 찍기에 너무 바빴다. 3일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린 탓도 있었지만, 사실 그냥 힘들었다. 등반 코스 입구에 들어서니 비가 쏟아진다. 옷을 긴팔로 갈아입고 비를 맞으며 올랐다. 이게 내 몸이 무거운지, 비에 젖어서 무거운지 아니면 산길이 험한 건지 전혀 분간이 안 갔다. 그냥 운동 부족이었던 내 평소 생활 습관이 많이 원망스러웠다. 어쩌면 20킬로 넘는, 얼마나 더 넘는 지도 모르는 가방을 메고 알프스에 오른 게 잘못 인지도 몰랐다. 채영이는 항상 나보다 앞에서 걸었고, 항상 나를 기다렸다.


 산 중턱쯤에 올랐을까? 채영이가 소리쳤다. '형 집이 있어요.' 아오 나는 말할 힘도 없는데, 대꾸도 안 하고 그냥 허벅지에 손을 짚고 바닥에 거친 숨을 떨구며 올라갔다. 진짜 집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산장이 있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었고, 체력을 다시 보충할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마을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죽이는 전망에서 우리는 첫 끼니로 소시지를 구워 먹었다. 장작들이랑 모든 것이 있었다. 마른 장작이 아니어서 애를 좀먹었지만 소시지를 구워 먹을 것이라는 낭만에 취해서 연기도 눈으로 마시며 탄 것인지, 익은 것인지도 모르는 시커먼 소시지를 먹었다. 진심으로 그 순간이 행복했다.

 

 비가 살짝 잦아들 무렵 또 한참을 올랐다. '저 놈은 왜 이리 빠른가? 다리는 내가 좀 더 긴 거 같은데?' 한 1m 터도 아니고 1센티 정도? 걷다가 쉬다가를 무한 반복했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행색은 거의 프로 등반가인데, 마음도 엄홍길 아저씨인데, 몸은 여중생이었다. 전혀 내 마음 같지가 않다. 도저히 못 간다 싶을 때 계곡을 발견했다. 손만 씻자에서 등목 할까?로 갔다가 에라 모르겠다로 갔다. 김이 나는 차가운 물에 몸이 닿자, 결국 알몸 샤워를 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바로 이 기분이었다. 씻은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한 일주일은 씻지 않은 기분을 바로 느꼈다.


'이게 바로 알프스 아입니까' 연신 외치며 제대로 씻었다. 보통 비누 보다도 1유로 더 주고산 자연무 슨 비누도 있었지만 그냥 물로만 씻었다. 비누 따위는 없어도 될 만큼 시원했고, 깨끗했다. 등반 초반에 다 마셨던 물도 1리터나 다시 채웠다.


씻고는 바로 산행을 다시 했다. 멀리 어디선가 딸랑딸랑 소 방울 소리가 들렸다. '와 소 때구나' 싶어서 그 방향을 향해 달리다시피 갔다. 헉헉 소리를 내며 달려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고, 양떼들이 보였다. 할아버지가 달리지 말라고 손짓했다. 양들이 놀래서 도망간다고. 그럼에도 끌어 오르는 아드레 날린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알프스에서 양떼라니. 제법 입꼬리가 올라갈 만큼 신이 났다. 알프스 소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해가 뉘엿뉘엿 이름 모를 어떤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7시 30분 정도 되었나? 눈 앞에 산장이 보였지만, 2시간이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샤워도 했겠다. 양들도 봤겠다. 산도 이제 적응되었겠다. 싶어서 그냥 누구도 멈추자는 말없이 더 가기로 했다. 하루 만에  산 중간쯤 있는 기차역에 도착하려는 욕심이 났다.


 그때부터 슬슬 코스가 험해졌다. 경고 게시판도 있었는데 가볍게 무시했다. 로프와 장비를 가지고 가라는 말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무시하기에 우리 욕심과 한번 붙은 자신감은 충분했다. 장비도 '텐트가 있고 등산 재킷이 있으니 괜찮아'라고 말하며 올랐다. 그러다가 사단이 발생했다. 한 순간에 길을 잃었고, 더 어두워졌으며,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형 x 됐어요.' 채영이가 말했다. 나는 사실 이미 10분 전부터 그랬다.


절벽은 가빠랏고, 안개인지 뭔지 때문에 바위는 미끄러워서 나를 자꾸 바닥으로 밀어 내쳤다. 갑자기 '스르륵' 잡을 것도 없이 절벽 아래로 끌려 내려갈 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 순간 돌부리 어딘가에 바지가 걸렸다. '부우 욱' 바지가 걸리며 찢어졌고, 나는 겨우 멈춰 섰다. 장난 아니라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미끄러져 어딘가에 걸려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한참이나 뒤처진 나를 채영이가 다시 찾으러 왔다. 무슨 일이냐 물어서 '죽을뻔했다 그랬다.' 사실이었다. 주마등이 스쳤다. 여행가지 말라던 엄마가 스쳤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서 조난 신고를 하자고 했다.


채영이는 여기까지 와서 그러면 안된다 그랬지만, 나는 진심으로 신고하고 싶었다. 죽는 것보다는 신고하고 쪽팔리는 게 낫다 생각했다.  내가 올 길이 아니었다. 채영이가 징징거리는 나를 끌고서 절벽을 더 기어올라 조금이라도 더 안전해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결국 아침에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우리 신고 준비는 해 놓자 말했다. 채영이 폰으로 조난신고 방법에 대해서 구글링 하다가 비용이 나왔는데 수 천만 원을 내야 한다는 검색 결과가 나왔다. 표정이 어두워졌고 우리는 바로 체념했다. 버텨야 한다 만년설이 바로 옆에 있는 절벽 중간 3000미터 정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마을의 집들은 점으로 조차 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가 뜨기를 버텨야 했다.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해가 뜬다고 해도 그 절벽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죽을 고비를 넘겨 왔는데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거길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꼭 내일 죽으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 잘 수 없었다. 자다가 떨어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일 죽는다는 그 공포보다는 덜 했다. 발은 어딘가에 닿아있으니까. 한전 하다 서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내일이 더 걱정이었다.


불안한 마음들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밑에서 무언가 어떤 기운이 올라왔다. 안개였다. 절벽 아래로 보이는 마을의 불빛이 점차 사라져 갔다. 안개가 눈앞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진짜 위험해진다' 하루 버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며칠을 더 버텨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걱정이었다. 채영이랑 약속했다. 내일 아침에 비라도 오면 우리 꼭 신고하자고, 빚을 내서라도 신고해야 한다고. 그리고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디오로 간단히 유언을 남겼다. 처음에는 웃겼지만 혼자서 찍을 때는 진심을 다해서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죽을 만큼 사랑해보지 못하고 죽는 게 억울했다. 스쳐간 지난 인연들이 보였다. 그리고 빌었다, 기도했다. 신이 있다면 존재한다면, 무신론자로 살았던 삶을 반성할 테니, 보여달라고 존재한다는 것을 빌고 또 빌었다. 앞으로 절실히 존재함을 믿을 테니 제발 비 오지 말게 해 주고, 내일 살아서 내려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생각나는 모든 신들의 이름을 다 외우며 눈을 감았다. 선 잠이었지만 결국 잠은 들었다. 그렇게 스위스에서, 알프스에서, 아이거 북벽에서 그 유명한 노스페이스에서 긴 하루는 지나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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