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경남 진주의 읍면리, 시골 출신, 누구보다 오랜기간 취업을 준비 했었던 육군장교가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대기업의 합격 통지를 받더니 돌연, 모든 것을 버리고 여행 길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수중에 정말 달랑 900원만 남게되었고, 그의 생존일기는 그때부터 예상치 않게 시작되었다. 왜 그는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대기업을 택하지 않고, 백수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리고 지구의 반대편에서 왜 하필 달랑 900원만 남게 되었을까? 지금부터 의구심 투성이인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는 잘 살고 싶었다. 아니, 어떻게는 잘 살아내고 싶었다. 나는 제법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떻게는 삼시세끼는 해결했지만, 친구와 비교했을 때 나타나는 상대적 가난 속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살아왔던, 혹시라도 '대기업에 취업'이라도 한다치면 동네 잔치라도 열릴 것 같은 시골 집성촌에서 스무해를 살았었다. 그러다 대기업 취업은 동네 어르신들과 친척들의 바람이자 곧 나의 꿈이었던 어쩌면 순수했을지도 모르는 그게 나였다. 이제는 제법 시간이 지나서 한국을 떠나온 지 3년째가 지나 버리는 중이다. 한때는 '토익, 토스, 자격증, 어학연수, 자소서, 면접'이라는 단어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었지만 이제는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밥 한끼'를 얻어 먹는데, 한국 밖에서의 생존에 그런 것들은 정말이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보통은 여행 전에 준비하는 루트 짜기? 경비 마련하기? 배낭싸기 이런 것들은 하나도 생각지도 않고, 그냥 출발 전날에 짐을 싸고는 무작정 지구 반대로 떠나와 버렸다. 사실 그런 계획적인 것들도 제법 다 중요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지난 시점에서 볼 때, 그런 것들은 다 하나 같이 부질는것들이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생각,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살아남는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시간에 배우는 그 '진화론'에 대한 흔한 착각은, 어떤 형태의 동물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생존을 위해서 보다 나은 단계로 점차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진화론의 핵심은 '살아남은 놈의 유전자가 진화, 그 자체이다.' 이다. 가령, 기린의 목이 길어진 이유는, 높은 가지에 매달린 먹이를 먹기 위해서라는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목이 조금이라도 더 긴 놈이 생존에 유리했고, 그래서 살아 남았고, 살아 남은 놈의 유전자가 다시 살아남고 살아남아 목이긴 지금의 '기린'이 된 것이다. 모든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동물의 가장 큰 형님이라 스스로 자부하는 인간이라고 다를까?
인간도 양손을 더 잘 쓰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라, 양손을 더 자유롭게 쓰는 놈이 살아남아 '도구'라는 것을 만들어 생존에 유리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유전자가 다시 되물림 되어 '양손을 잘쓰는 자'가 자기 유전자를 다음 대에 전달한 것이다. 이런 진화론과 생존의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서도 존재한다. 현대의 사회에서도 역시 더 돈이 많거나, 더 학벌이 좋은 사람이 생존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 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짜 이번에도 예외없이 결국에 살아 남는 놈이 진화 하는 법이다. 학벌이, 돈이, 스펙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아남는 다면 다음 대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임무는 '생존'한 자의 몫임이 분명하다고 당당히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생존했다. 그리고 아직도 생존 중이다. 나는 26년, 대기업이라는 문턱을 넘기 직전까지, 아니 넘고 나서도 '생존' 자체 보다는, 생존에 유리한 학벌과, 돈과, 스펙과 좋은 직장이 더 크게 보였다. 그게 전부인 것 같은 생각에 평생을 살아왔고, 그렇게 배워왔고 다른 주변인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문턱을 넘을 때, 평생의 가치관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그때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합격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평생가지고 있던 물건을 되찾으려 하듯이 세상 밖으로 스스로를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들고갔던 1,500만원을 유흥과 놀이에 탕진하고는 두 달여만에 다쓰고는, 900원만 가진 채, 전혀 원하지도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지구 정반대편인 아일랜드라는 나라에서 백수로서의 생존기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