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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Feb 27. 2020

한 임산부가 본 비혼과 비출산

내겐 당연한 일이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인정하기

 나는 기혼이고 임신을 했지만, 비혼과 비출산에 대해 관심이 많다. (비슷하게 이성애자지만 동성애 이슈에 관심이 많다) 비혼과 비출산 이슈가 처음 대두되었을 때, 나는 내가 당연히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본 글에 의하면 보통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대한민국은 아이를 양육하기에 너무나 안 좋은 곳이다. : 과도한 경쟁, 1등 만능주의, 황금만능주의, 각종 강력범죄에 비교해 미약한 처벌, 미세먼지, 맞벌이 부부의 양육문제 등
-아이를 올바른 인간으로 잘 기를 수 있을지 걱정된다.
-(여성의 경우) 본인의 커리어와 건강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나도 대부분 동의하는 이유다. 나의 삶도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고, 삶에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아이 양육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는 문제고, 나와 남편이 좋은 부모가 되어 바른 아이로 양육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나만 아이를 잘 기른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닌 것도 걱정스럽다. 경력단절도 계속 고민하는 문제이며 아이로 인해 나의 삶은 없어지지 않을까, 건강이 안 좋아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항상 존재한다. 임신해보니, 일 욕심이 없는 나도 가끔은 힘든데 만약 일 욕심이 많은 타입이었다면 임신과 출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래도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라면 내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아이를 갖기 전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싶고,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내가 만들어내고 싶다. 어쩌면 아이는 커서 내게 왜 낳았느냐고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최선을 다해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키워내고 싶다.


 어떤 친구들은 임신하기로 선택한 내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임신을 선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내겐 선택하냐 마냐 할 고민도 할 필요 없이 결혼과 임신은 당연하게 내 삶의 과정 중 하나였다. 이를테면 학교를 입학하면 졸업을 하는 것처럼, 내게 당연한 일이었다. 졸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다시 생각해보니 자퇴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냥 당연한 과정이다. 나는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이들이 더 대단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나에게는 당연한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 정말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 같다.


 나는 결혼과 출산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을 해서 행복하지만, 미혼일 때도 이만큼 행복했다. 행복의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뭐가 더 낫고 뭐가 더 안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임신을 해서 예전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지만, 내 글의 조회수가 높아지고, 좋아요가 눌리고, 댓글이 달릴 때 느끼는 행복감이 임신해서 느끼는 행복감보다 훨씬 더 크다. 아이를 사랑해도 내 개인의 성취가 임신으로 얻는 만족감이 훨씬 큰 것이다. 그러니 이 감정을 누군가는 다른 것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에서 성취감을 얻는다거나, 취미생활로 만족을 느낀다거나, 애완동물을 기른다거나, 종교나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얻는다던가-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행복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면 그만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가끔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다르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무시한다. 가끔 어떤 글은 무례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쓴 '아이를 왜 낳으세요?'라는 글은 참 많이 읽었고, '능력이 안 되면 아이 낳지 마세요', 라는 도를 넘은 것 같은 글도 많다. 어떤 글은 임신 출산을 하는 사람들을 마치 '덜 떨어진 선택을 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듯한 글도 있다.
 얼마 전에 본 어떤 글은 미혼인 글쓴이가 미혼인 친구와 아이가 있는 친구와 만나 이야기였다. 미혼 친구 두 명이 아이가 있는 친구 앞에서 '아이를 낳아서 나를 희생하기 싫다', '몸 망가지고 커리어 망가지는 게 싫다', '시댁에 얽매여서 살기 싫다' 는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가만히 있는 아이가 있는 친구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너희가 남들 말만 듣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다', '아이를 낳아서 포기해야 하는 게 많지만, 그 이상의 행복을 느낀다.' 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올린 글이었다. 댓글은 거의 글쓴이를 나무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글쓴이가 생각이 짧다고 느껴졌다. 글쓴이는 굳이 아이가 있는 친구 앞에서 굳이 그렇게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했을까? 서로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다른 생각이더라도 굳이 나쁜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좋고 긍정적인 말만 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제발 생각이 다르면 그렇다고 하고 넘어가지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가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이들에게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던가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라는 쓸데없는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 (모두 내가 미혼일 때 들었던 이야기다. 당연히 결혼과 임신을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기분이 나빴다) 그냥 지금처럼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내가 되면 좋겠다.
 나중에 내 아이가 난 이러이러한 이유로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을래, 라고 하면 존중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엄마, 나는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을래. 그건 정말 가치 없는 일 같아, 라고 말한다면 정말 가슴이 아플 것 같다.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도록 내가 모범이 되어야지.


 한참 가구를 보러 다닐 때, 직원들은 항상 애완동물을 키우냐고 물었다. 소파에 스크래치가 덜 나는 제품을 소개해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남편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으니 생각하는 관점도 많이 바뀐 것 같다며, 몇 년 뒤에는 ‘아이 계획이 있으세요?’라고 직원들이 물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관점이 점점 바뀌고 있다.
 비혼과 비출산이 일종의 트렌드가 된 게 국가적으로는 손실이겠지만, 이기적으로 생각하자면 내 아이는 인구감소로 인해 지금보다 취업난이 심각하지 않고, 집값 문제로 고생을 덜 할 것 같아서 좋을 것 같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인구가 너무 많은 것 같으니 조금 줄어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또 가끔 뉴스에 나오는 아이를 학대나 방치하는 비정한 부모같이 자격 없는 부모가 줄어들어서 좋을 것 같다. (아이 키울 자신이 없으면 제발 피임을 잘하자)
 어쨌든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존중한다. 과거에는 당연한 일이었고 하지 않으면 하자 있는 인간으로 여겨져서 어떤 사람들은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던 결혼과 출산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앞으로 또 어떤 당연한 것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들로 인식이 바뀔까? 살아가면서 다수의 관점이 변하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임신하지 않을 수도 있는 시대에, 아이를 낳기로 했다면 정말 자격 있는 부모가 되어야 될 것이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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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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