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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Mar 06. 2020

아이의 성별과 부담감, 4대독자

3대독자와 결혼한다는건

 아이의 성별을 들었다. 법적으로는 35주 이후에 알려줘야 한다지만, 대학병원을 제외하고는 16주쯤에 힌트를 준다고 해서 기대 중이었다. 아이의 성별이 무엇이든 초연하고자 했으나 병원을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궁금함이 극에 달했고 어느 때는 초조하기도 했다.
 15주가 되자 불편했던 증상 -잠이 많이 오거나 입맛이 없거나 하는- 이 거의 없어지고 전과 달리 에너지가 넘쳤다. 가끔 피곤하긴 했는데 임신 전에도 게으르고 자주 피곤했기 때문에 이 증상이 임신 때문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임신 중기인 16주부터는 아무 증상이 없는 게 아이가 잘 있다는 증거라지만, 막상 아무 증상이 없으니 초조했다. 아이가 잘 있는 게 맞을까? 어디 아픈 건 아닐까? 성장이 더디진 않을까? 아이가 잘 있다고 텔레파시라도 보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떤 임산부는 집에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는 기계를 사던데, 왜 사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라도 우리 아이가 잘 있는지 확신이 필요하다. 태동이라도 느낀다면 좋겠다.


 산부인과 진료 침대에 눕는 일은 늘 긴장된다.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지, 혹시나 아이가 안 좋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그 짧은 순간 몰아친다.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기계를 배에 대고 아이의 모습이 나오면 그제야 안심이 된다.
 차가운 젤이 초음파기계의 움직임에 따라 내 배에 펴지는데, 그 순간은 차갑다는 걸 인지할 새도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게 된다. 모니터에 그토록 그립던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고추가 선명하네."
 왕자님 공주님이라던가, 파랑 분홍으로 힌트를 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니 너무 웃겼다. 선생님은 몇 번이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초음파 속 아이는 4주 전보다 훨씬 많이 자라있다. 잘 챙겨 먹지도 않았는데 건강하게 있어서 고맙다. 아이는 연신 손을 움직이고 머리를 움직이며 활발하다. 그 모습마저 에너지 넘치는 남편을 닮은 것 같아 기쁘다. 아이의 척추와 갈비뼈, 심장과 위, 팔과 다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아이가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엄마 걱정 말아요,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안심된다. 건강하지 않은 내게서 이렇게 건강하고 활발한 아이가 찾아오다니,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다.
 2분여간의 짧고도 긴 초음파를 보고 4주 뒤에 만나자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그럼 성별이…??"
 라고 물었다가 의사 선생님은 몇 번을 말해줬는데 모르냐며 장난이 섞인 호통을 했고, 나와 간호사들은 웃었다.


 사실 내가 바라는 성별은 아들이었다. 아이의 성별이 아들이라고 하자, 묘하게 안심이 되고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내가 보수적이고 유교적이어서일까. 사실은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할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딸이 너무 갖고 싶지만, 그래도 아들이 첫째라면 그 이후에 걱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의 옛날이야기 - 첫째가 딸이어서 은근히 구박을 받았기에, 남편을 가지기 전에는 식이요법을 열심히 하고 절에 가서 아들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도록 빌었다던 이야기 - 를 들을 때나, 우리 할머니가 내게 종종 했던 말들 - 네가 아들이었어야 하는데 - 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러지 않길 바랐다. 아이가 어떤 성별이든 실망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의 성별과는 상관없이 아이를 사랑하고 싶었다.


 사실 남편과의 결혼이 망설여졌던 한 이유는, 남편이 삼대독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남편이 선택한 일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일도 아니었지만 귀하게 낳은 삼대독자인 남편과 아들을 낳기 위해 낳은 셋째딸이라는 내 존재는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첫째가 딸이었을 때, 그리고 내가 아들을 가지지 못했을 때 내가 받을 부담감이 너무 크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성별이 아들이라고 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뻤다. 그래서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시아버님에게 알렸다. 아버님은 폐백 때 대추만 던지실 정도로 아들을 원하시는 분이었다. 아버님은 정말 기뻐하셨다. 어머님은 크게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은연중에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라시는 것 같았는데, 마찬가지로 기뻐해 주셨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하셨고 축하해주셨다. 할머니도 잘되었다며 좋아하셨다. 나중에 둘째가 생겼을 때도, 둘째의 성별이 나왔을 때도 집안의 어르신분들이 모두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다.


 남편은 무덤덤했다. 아들이 생긴 기분이 어떠냐고 하자 자신은 아들인 줄 알고 있었다며, 꿈에 몇 번은 나왔다고 했다. 남편이 아들이라고 무척 기뻐했다면 서운했을 것 같은데,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니 한쪽으로 또 서운했다. 이 이상한 마음. 남편은 딸이 아니어서 조금 아쉬워하기도 했다. 나도 막상 아들이라고 하니 슬쩍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레이스가 잔뜩 달린 원피스나 보넷을 입히고 싶었다. 결혼 전 우리의 가족계획은 '딸-아들-딸'이었다. (결혼 후에 나는 '아들-딸-딸'로 희망 사항을 수정했다)


 성별로 사람의 특성을 구분 짓거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나도 아들과 딸 각자에게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무뚝뚝하고 주변을 잘 못 챙기고 애교 없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부모님께 연락을 잘 안 하는 속칭 '아들 같은 딸'이며, 남편은 애교 많고 부모님과 자주 연락하고 살가운 '딸 같은 아들'이다. 이 특성은 연애 때도 유효해서 연애 시절 남편이 더욱 연락을 잘하고 애교가 많았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가끔 동굴에 들어가는 스타일이었다. 연애 시절 내가 남자 같은 성격이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이렇게 성별이 아닌 사람에 따른 성격이니 나는 아이를 키울 때 성별로 한정 짓지 않고 그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며 키워야지. 그런 의미로 아이의 이름은 중성적으로 짓고 싶었는데, 요즘 따라 '혁' '훈' 같은 음이 들어가는 남자다운 이름이나 '나은' '수아' 같은 하늘하늘하고 여성스러운 이름이 예뻐 보인다. 이런 걸 보면, 어쩌면 내가 아닌척하지만 성별에 따라 과도하게 구분 짓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치우치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고, 경계해야지.


 아가, 네가 아들이라고 과도한 부담감을 주지 않을게. 너를 절대로 남편 대신으로 생각하지 않을게. 그런데 아이가 군대에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 슬프다. 20년 안에 통일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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