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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Feb 22. 2020

새 모성 때문에 헌 모성이 희생된다

임산부만 소중한 건 아니잖아요


 “새 모성 때문에 헌 모성이 희생된다.”
 최근에 듣고 정말 크게 웃었던 말이다. 어느 회사에서 임산부를 배려해주면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찌나 센스있는 말인지. 동시에 조금 슬픈 말이기도 하다.
 임산부를 배려해주는 정책은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 임산부를 배려해주는 만큼 다른 직원이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임산부가 2시간 단축 근무를 하는 만큼 다른 직원이 임산부 직원의 일을 맡아 하거나 전화라도 한 통화 더 받아야 할 수 있으며, 임산부가 야근을 안 하는 대신 다른 직원의 근무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그 기간만큼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고 남은 직원의 업무가 가중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료가 육아휴직을 썼을 때, 같이 일하던 나는 힘들었다. 대체 인력이 있다고 하나 업무를 100% 소화하지 못했고 몇 개월 뒤 떠날 직원이니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경우 맡기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번에 나도 혜택을 받겠지 하며 버텼지만 쉽지는 않았다. 대체 인력이 있는데도 어려웠으니, 대체 인력이 없으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도 안 된다. 이렇게 새 모성 때문에 헌 모성 혹은 다른 직원이 희생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나는 그 대책 중 하나가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초회사만 다녀서 잘 모르지만, 남직원이 육아휴직자에게 불만을 가지는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 만약 남직원도 일정 기간-최소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이 의무화된다면 여직원의 육아휴직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이해해줄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는 내가 혜택을 받겠지, 혹은 나도 혜택을 받았으니까, 하며. 늘어났다곤 하지만 배우자 육아휴직 10일은 너무 짧다. 그마저도 중소기업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출산을 권장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근로자의 비출산을 바라는 것 같다. 출산한다고 지자체에서 지원금을 주기보다는 그 지원금으로 믿을 수 있는 양육기관을 확충하고, 남성 근로자의 육아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가 활성화되도록 남성 육아휴직을 잘 시행하는 사업장에는 지원금을 충분히 주고 대체 인력 수급이 원활히 되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 딸바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남성의 자녀 사랑과 육아 참여도는 높아지고 있는데 사회 분위기와 제도는 그것을 못 따라오는 것 같다. 아이에게 엄마 말고도 아빠가 필요하다. 아빠에게도 아이는 소중하다. (이상하게도 육아휴직을 해본 남성은 대체로 둘째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대책은 시간제 근무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지금도 10시~5시, 9시~2시 등의 근무를 희망하는 여성들이 무척 많다. 나도 월급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근무시간을 줄여서 자녀 양육에 더 힘을 쏟고 싶다. 다양한 근무시간과 탄력근무제가 활성화가 된다면 자녀가 아플 때 병원을 간다고 눈치가 보이거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가 일찍 마쳐서 오래도록 학원을 뺑뺑이 돌려야 된다거나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사실 나는 임산부 동료보다 육아하는 동료를 둔 입장에서 더 배려해야 될 부분이 많았다. 임산부는 육아휴직을 제외하면 오래 자리를 비우지 않아서 임산부일 때와 아닐 때 별 차이가 없었다. 갑자기 회사를 비워야 한다거나 하는 상황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육아하는 동료는 달랐다. 아이에게는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자주 생겼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거의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는 갑작스러운 연차사용이 어려웠나 보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연차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회사여서 자녀의 어린이집이 방학이거나 자녀가 아플 때 일주일씩 연차를 쓸 수 있었고 갑자기 조퇴하는 것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동료는 가끔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동료의 업무 공백이 생기면 그 자리를 메꿔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내 연차가 아픈 동료의 아이 때문에 취소된 적도 있었고, 그래서 내가 못 쉬어서 크게 아팠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나도 일주일씩 길게 휴가를 다녀올 수 있고 내가 아플 때 바로바로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내가 혜택을 받으면 타인의 혜택에도 관대해지는 것 같다.


 미혼인 직원에게는 역차별일 수 있는 방안들이지만, 미혼인 직원에게도 가족 돌봄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쓰다 보니 일은 누가하나 싶지만,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겼을 때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일 가정 양립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복지가 보편적으로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들은 모두 자녀 양육을 어떻게 했을까? 부유해서 사람을 쓰거나 외벌이로 양육했을까? 본인들이 자녀 양육에 어려움이 없어서 모르는 걸까? 왜 내 눈에 보이는 게 그들에게는 안 보이는 걸까? 평범한 직장인을 위한 정책은 표를 얻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 걸까? 현실성 있는 제도가 생긴다면 좋겠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아이를 못 낳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사실 내가 이 고민을 하고 있다. 둘째를 낳고 싶은데 둘째를 낳으면 일을 못 할 것 같아서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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