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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 Mar 21. 2020

코로나가 임산부에게 미친 영향

바뀐 일상


 확진자가 급속도로 많아지던 2월 말,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어느 주말, 자고 일어나니 확진자가 1,000명이 되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울기도 했는데, 재택근무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 이후 며칠 만에 확진자가 2,000명이 될 정도로 아주 빠르게 확진자가 늘어났지만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이기적일 수 있는지 스스로 놀랐다.
 재택근무는 좋았다. 출근할 때보다 한 시간은 더 잘 수 있었고, 아침에 바쁘게 샤워를 할 필요도 없었다. 오전이면 햇빛이 잔뜩 들어오는 거실 소파에 앉아 햇볕을 쬐며 일을 했고, 밥을 후다닥 먹을 필요도 없이 40분 동안 천천히 점심을 먹었다. 출퇴근하느라 피곤했던 몸이 퇴근 후에도 가뿐해서 저녁을 차리는 일도 번거롭지 않았다. 2,000명에서 3,000명으로, 4,000명에서 5,000명으로 코로나 19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늘었지만 내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나는 꼬박 열흘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불안했던 마음이 무뎌졌을 무렵,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심 아쉬웠지만, 재택근무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이 지역의 확진자도 별로 늘지 않아서 수긍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기 시작했다. 편도 40분이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1/3로 줄어드는 기적. 교통비가 4배가 되는 슬픈 매직. 퇴근하면 녹초가 되던 몸이 집에 와서도 쌩쌩하다(이건 임신 초기에서 중기가 된 덕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행사가 올스톱되었다. 3월부터 각종 행사로 바쁜 예정이었으나 모두 연기가 되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연기된 일을 처리한다고 바쁘겠지만 지금은 여유로워서 좋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각종 정리를 할 수 있어 좋다.


 그리고 나는 퇴사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퇴사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해야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개학이 1달 넘게 미뤄지고, 맞벌이 부부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그 모습은 내 아이가 전염병에 걸렸을 때의 모습일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연차를 쓰는 것이고, 그다음은 부모님께 맡기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주, 삼 주가 넘어간다면? 어쩔 수 없이 긴급보육을 보낸다는 맞벌이 부부의 사례를 다룬 기사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식도 못 챙길 것 왜 낳았냐고 조롱의 댓글을 단다. 맘카페에는 재택근무를 해서 다행이지만 일이 안 돼서 차라리 출근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고, 무급휴가를 받아서 다행이지만 월급이 안 나오니 걱정된다는 사람도 있고, 어린이집에 긴급보육을 보내지만, 눈치가 보인다는 사람도 있고, 결국 퇴사한다는 사람도 있다.
 임산부는 임산부대로 걱정이다. 임산부가 걸리면 약을 잘 쓸 수 없고 산모의 열이 높아지면 태아에게 영향이 가서 기형아가 될 수 있기에 두려움이 크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도 있지만 많은 회사에서 재택근무가 시행되지 않아서 많은 임산부가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육아휴직을 앞당겨서 들어가거나 퇴사를 선택한다.


 코로나 19사태가 장기화하자, 나는 육아휴직 전에 퇴사하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다.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 아이를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서 각종 병치레를 하게 하며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19가 약간 수그러들자, 나는 다시 육아휴직을 한 뒤 계속 다녀보고 퇴사할지 계속 다닐지를 선택하기로 했다. 부장님에게 코로나 사태를 겪으니 양육하며 회사에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내가 전문성을 키울 수 없고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부장님은 내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그래도 약한 내 체력에 일이 많은 회사보다는 일이 적은 이 회사가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 낫지 않겠냐고 나를 회유했다. 출산휴가를 1개월 쓰며 30년 동안 일한 박사 출신 부장님의 현재가, 평일도 모자라 주말까지 일에 치이면서도 저녁 식사를 고민하는 모습인 것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일을 하며 집안일 대부분을 맡아 할 거라면 그냥 집안일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버는 순수익은 끽해야 XXX 만원일 뿐인데. 그런데 내가 퇴사하면 0원이 되는데, 적은 돈은 아닌 걸까. 회사에 다니는 이유가 돈 때문인 것만은 아니지만, 정량화된 수치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돈밖에 없기에 퇴사를 고민하면 늘 돈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


 친구들에게 코로나를 겪으니 퇴사해야겠더라고 이야기하자, 모두가 아이 키우며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잘 선택했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아직은 아이가 없는 친구들이 몇 년 뒤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때 친구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도 잘 선택했다고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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