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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LL Mar 17. 2021

출산한 직장인은 전업맘이 되었다.

육아휴직 끝에 퇴사하는 직원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죄송해요. 남편 발령이 나서 퇴사해야 할 것 같아요."

 육아휴직 끝에 퇴사하는 직원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 당사자가 되었다. 상사에게 가장 미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퇴사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퇴사 절차는 간단했다. 한 줄짜리 사직서를 쓰고, 회사에 가는 일 없이 퇴사했다. 육아휴직급여와 퇴직금이 차례로 입금되었다.


 육아하며 힘들 때면 가끔 복직 후를 생각했다. 목이 늘어난 면티가 아닌 단추가 많이 달린 옷을 입고 장신구를 주렁주렁하고 풀메이크업을 한 뒤 출근하는 나를 상상했다. 아이가 울어서 아이를 안고 아이의 방해를 피해 겨우 밥을 먹던 것과 달리 천천히 밥을 먹는 점심시간을 상상했다. 누구 어머님이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나를 그렸다. 물론 워킹맘이 되면 지금보다 더 힘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육아에 도망치고 싶을 때면 합법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복직 후를 상상했다. 이젠 내게 그런 미래는 사라졌다.


 12월 31일, 나는 서류상으로 완벽히 퇴사했다.


 1월 2일, 남편은 A도시로 출근하기 시작했고 B도시에는 나와 아이만 남았다. 팔자에 없으리라 생각했던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기약을 모르는 주말부부 생활이 이어졌다.


 2월 1일, 원래의 나는 복직했겠지, 라고 생각하며 출근하지 않음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3월 초, 우울증이 극심해졌다. 아이는 몇 주째 새벽마다 한두 시간씩 울었고 하루에 다섯시간만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종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걸고, 아이를 보살피고, 이유식을 하고 내 밥 세 끼를 차려 먹으면 하루가 끝났는데도, 하루가 지루했다. 길게는 새벽 다섯 시에서 밤 열 시까지 업무를 하는 것 같았다. 토요일이면 몸살이 나서 오전 내내 잠을 자고도 몸이 아팠다. 그럴 때면 만약 남편이 A도시로 가지 않았고 내가 복직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더 힘들었을까, 덜 힘들었을까? 나는 매일매일 아이가 잠들기만을 바랐고 하루가 끝나길 바랐다.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ㅇㅇ 씨, 인수인계 좀 해줄래요?


 퇴사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제 빠르게 남편에게 연차를 낼 수 있냐고 물은 뒤 가능한 가장 빠른 일자로 출근 날짜를 잡았다. 한때는 그렇게 싫어하던 출근인데, 날마다 출근하는 날을 기다렸다.


 우습게도, 출근하기 전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출근하기 싫다.


 나란 사람은 대체.


 그래도 내 마음속 가득하던 먹구름이 걷혔다.




 출산한 한 직장인은 결국 전업맘이 되었다. 나는 늘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막상 퇴사하고 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다시 사무직으로 취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아쉬움, 아이를 보는 것이 마냥 행복하지 않고 가끔은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뒤섞였다. 이제 사회에서 나는 비경제활동인구인 경력단절여성이다. 여성 재취업센터에서 일하던 내가 경단녀 당사자가 되었다. 그녀들을 상담할 때 그녀들이 했던 말을 이제 내가 생각한다.


과연 제가 다시 일할 수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대단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일하지 않는 엄마는 경력단절여성이라 부르고, 쉽게 맘충 취급한다. 사회에 단절되어 사고가 편협해지고 고루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다시 사회생활 하는 게 두려워진다. 아이를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나로 살고 싶다. 십 년만 육아에 전념하며 보내자 생각하면서도, 그러고 나서 그 이후의 나를 생각하면 막막해진다.


 임신 기간 내내, 휴직 기간 내내 퇴사와 복직 사이에서 망설이다 우연히 퇴사를 하게 된 것처럼 미래는 정말 알 수 없다. 그저 그 시기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함을 알면서도 다가올 미래가 두렵다.


 나는 이렇게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며 경단녀가 되었다.


-임신한 직장인은 워킹맘이 되나요? 전업맘이 되나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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