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없던 시절 임신을 했는데, 임신 초기에 코로나가 생겼다. 임신 기간 내내 코로나를 두려워하며 살다가, 코로나 속에서 출산하고, 코로나 때문에 조리원에서 보호자 출입 불가인 채로 지내다가, 코로나 때문에 산후도우미도 취소했다. 아이의 나이는 두 살, 코로나도 두 살. 이제는 코로나가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가끔 일어나는 '코로나 때문에' 벌어지는 일은 익숙해지기 어렵다. 나는 또 '코로나 때문에' 돌잔치를 취소했다. 거짓말을 살짝 보태 5개월 동안 알아보고 준비한 돌잔치를.
화려한 돌잔치를 원한 건 아니었다. 원래 임신했을 때부터 돌잔치는 크게 할 생각이 없었고, 양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소규모 돌잔치를 계획했다. 생일이란 건 매년 돌아오는 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라서 돌잔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계획을 하며 알아볼 것이 많아 돌잔치를 하지 않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정말로 돌잔치를 취소하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다.
코로나, 전염병 시대에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토록 포기해야 하는 일이 많은 일이었구나. 다시금 깨닫는다. 외출을 포기하고, 문화센터를 취소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는, 모두 취소하는 것들 일색이다.
사람들이 백신을 맞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도 살짝 풀렸던 것도 사실이다. 망설이던 문화센터를 등록하고, 버스를 타고 문화센터로 향했다. 가끔은 카페도 가고, 꽃놀이도 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그랬겠지. 코로나 확진자 수가 1300여 명이 넘어서면서, 임산부 시절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00명이 넘는 걸 보고 무서워서 눈물을 흘렸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는 덤덤하지만, 그때보다 더 씁쓸하다. 나는 이제 다시 문을 닫고, 최소한의 외출을 빼고는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