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본질
회사에서 대표이사가 바뀌면 조직은 크게 흔들리게 마련입니다.
대표가 정기적으로 교체되는 회사는 조직과 구성원이 어느 정도 익숙해서 단기간에 안정을 찾는 반면, 오너가 오랫동안 대표직을 맡아오던 기업은 대표가 교체되면 큰 변화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신임 대표의 경영 철학과 사고방식, 일하는 스타일이 기존 대표와 다르기 때문에 회사 전체에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조직 구조, 임원 구성, 의사결정 방식, 보고 체계, 영업 방식 등등 말이죠.
새 대표는 조직 구조에 변화를 꾀해야 기존 대표이사와의 차별성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에 조직을 자기 색깔에 맛게 바꾸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집니다.
본인의 인맥을 외부에서 데려오거나, 내부에서 특정 팀이나 인력을 골라서 본인 직속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변화를 꾀하려면 친위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가 바뀌면 임직원들은 긴장 상태에 놓입니다. 직급이 높을수록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팀장과 본부장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신임 대표와 부딪치면서 업무 방식 변화, 권한 조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새 대표의 이력을 살피고, 성격과 소통 방식, 경영 목표로 무얼 내세우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찰합니다. 조직 구조 변화와 인사 관련 정보를 얻으려고 분주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 업무 몰입도는 떨어지고 불필요한 루머가 조직을 떠돌기 쉽습니다.
오늘은 제가 과거 경험했던 '준비되지 않은 신임 대표이사' 사례를 소개하며, 대표이사 리더십의 핵심 조건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반면교사 리더십입니다.
중견기업을 바라보며 성장하던 한 중소기업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오너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대표직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당장 휴식이 필요한 상황. 회사는 후임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임원 중에서 대상자가 몇 명 있었으나 대표직을 모두 고사했습니다. 결국 외부 영입으로 가닥이 잡혔고, 회사와 오너는 명문대 교수 출신 전문가를 영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술 분야에서 명성이 높고 공공연구기관에서 본부장 경험도 있었기에 임원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오너와 친분도 있고, 회사와 몇몇 정부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면서 임직원들도 어느정도 그분을 알고 있는 상태였고요.
저도 그 분이 산학연 회의를 주재하는 외부 회의 자리에 몇 번 참석했었는데 그의 자신감 있고 차분한 태도, 좌중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하는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회의 후 식사자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영리법인 경영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과 실무 업무를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우려가 있었지만 그는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새 대표 취임 후 곧바로 이해가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임 대표는 팀장을 배제하고 팀원들에게 바로 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직 보고 체계는 무시되었고, 팀장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팀 업무가 진행되는 상황을 맞닥뜨렸습니다. 조직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역할과 계층이 정의되어 있고 이에 따라 시스템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리더가 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형국이었습니다. 팀장들이 새 대표를 불신하고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의 핵심 자원인 팀장급을 잘 활용하는 것이 대표의 역할인데 팀장들을 권위로 누르려고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분은 대표이사란 뭐든 할 수 있고, 어느 부하에게든 아무때나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새 대표는 업무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이런저런 규정 변경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관리 업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소 3개월 정도는 업무 파악에 집중해야 했지만 그런 과정없이 사소한 규정들을 조급하게 변경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급한 일도 아니고 우선순위에서 떨어지는 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병역 군필자에 대한 연봉 우대 규정 변경이라든지, 직급 수당 신설 같은 것이었는데, 임원회의에서 그 규정들이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면 그 자리에선 수긍하는 듯 했지만 결국 본인 생각대로 결정해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영관리부서장(C 이사)과 대표의 갈등이 깊어졌고, 대표는 이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C 이사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자유로운 쌍방향 소통과 의견개진하는 조직문화가 상처받기 시작했습니다.
대표는 형식적인 회의를 하면서 “의견을 듣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실무진 전문성을 인정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말을 듣는 척하는 리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C 이사는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늦둥이가 있어서 1년 짜리 육아휴직을 신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표는 그의 휴직을 계기로 '부서장 면직'을 하고, 본인이 직접 경영관리부서장 대행을 맡는다는 인사발령문을 사내 공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C 이사나 관리부 직원들과 사전 소통이 없었다고 합니다.
C 이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굳이 '부서장 면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리고 대표이사가 직접 부서장 대행을 맡을 필요가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부서차석들이 부서장 대행 역할을 할 수 있고, 리더급으로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왜 굳이 대표이사가?
이런 상황은 영업부문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표는 관리부의 사원과 대리급에게도 세세한 총무업무까지 직접 지시했습니다. 몇 명의 직원들이 그만두거나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이후 그는 '회사 이전 및 사옥 건립안'을 검토하면서 또 한 번 구성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회사 이전은 장기적인 과제이고 시급한 안건이 아니었거든요. 오너는 당황했습니다.
처음 약속했던 임기 3년이 지나자마자 어느정도 건강이 회복된 오너는 다시 대표이사를 직접 맡았습니다.
신임 대표가 구성원 신뢰를 잃고 조직을 장악하지 못한 이유는 리더십 부족과 경험 부족 때문입니다.
그는 대표이사 역할에 대해서 어떤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표이사는 모든 걸 알아야 하고, 모든 걸 지시하고 의사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편견 말이죠.
자기 전문 분야에서의 권위를 '조직 전체를 통솔하는 리더십'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는 대표이사의 역할, 진정한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1) 구성원을 활용하는 능력 (동기부여, 권한위임 포함)
대표이사는 모든 걸 알아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모든 걸 잘 해야 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대신 잘 하는 사람들을 쓰임새있게 활용하는 능력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동기부여하는 것입니다.
리더가 일선에서 영업을 진두지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역량이 안 되더라도
직원을 격려하고, 동기부여하고, 후방에서 지원 역할만 잘 해도 대표 역할을 적절히 할 수 있습니다.
대표이사 리더십은 부하직원을 지원하고, 의견을 들어주고, 동기부여하고, 권한위임을 적절히 해서 조직성과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조직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리더가 구성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집니다.
2)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있는 리더
자존심이 강한 리더는 권위와 체면을 중요시합니다. 본질보다는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신경 쓰는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반대 의견을 공격 또는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합니다. 난감한 일입니다.
구성원들이 이를 눈치채는 순간, 아무도 더 이상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피력하지 않습니다.
반면 자존감이 높은 리더는 내적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권위가 상처받을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타인 의견을 소중하게 다룰 줄 압니다. 비판을 수용하며, 구성원을 통해 더 나은 결정을 내립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의 표현처럼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리더가 강한 리더."입니다.
3) 진정성있는 소통 능력
형식적 회의와 진정성 있는 소통은 전혀 다릅니다. 실무진 의견을 인정하고,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은 대표이사의 핵심 자질입니다.
4) 지속적인 리더십 학습
대표이사는 기술, 전문지식 만으로 조직을 이끌 수 없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 심리, 리더십 학습이 필수적입니다. 리더십 공부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대표이사에게 전문지식과 기술능력, 영업력은 중요한 역량입니다만 이것은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닙니다. 필요조건일 뿐입니다.
팀장 리더십도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대표이사와 다른 점은 보다 장기적이고 회사 전체 영역을 다루느냐 하는 범위의 문제일 뿐입니다.
신임 대표이사의 반면교사 사례를 소개하면서 대표이사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