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내 삶을 성장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 나의 경우는 ‘사랑, 가난, 연애, 교육, 책, 실패’가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나의 이야기가 글을 여러분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는 힘이 무엇인지를 찾는 데도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사랑으로 빚어진 떡,
사랑으로 빚어진 술,
사랑으로 만들어진 안주,
사랑으로 만들어진 바람만 마시고 먹는 나라.
사랑으로 지어진 집,
사랑으로 서 있는 기둥,
사랑으로 자라는 풀잎,
사랑으로 숨 쉬는 먼지,
사랑으로 물들어진 종이,
그 위에 사랑의 글씨만 씌어진 나라.
사랑의 밥을 먹고,
사랑의 옷을 입고,
사랑의 국물을 마시고,
기침도 사랑처럼 하는 그런 별나라.
언제나 바뀌지 않는 사랑의 눈빛과 가슴들이 공기처럼 흐르는,
사랑만 숨 쉬는 내 누이의 꿈속의 유리알 같은,
그런 먼 나라.
이 지상 늪에서 보면 언제나 저만큼 가물거리는,
꿈꾸는 내 누이의 꿈속 먼 나라,
머나먼 저쪽의 불 켜진 사랑의 나라.
(이태수, <어떤 사랑 나라>)
젊은 날 사랑을 고대하며 연애편지에 즐겨 썼던 시(詩) 중 하나다.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나라에서 살고 싶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인간은 사랑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믿어 왔기에….
사진설명:
(사진 속의 아이는 내가 아니라 지금은 나보다 덩치가 더 커진 아들 준영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환갑이 넘으셨을 때인데 이 때만 해도 참 젊고 고으시다. 그 덕분에 나도 아이들도 참 고은가 보당~^^)
사회생활을 하면서 까마득히 잊혔던 순수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닐까. 지금까지 여러 권의 책도 쓰고, 방송도 하고, 대학 강단도 오르며 이렇게 성장한 나를 보며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 사실 나 자신도 놀랍다. 부족한 내가 이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어머니가 나에게 보여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가장 큰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성이 조용하고 품위 있고 여성적이었던 어머니. 보통의 어머니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연약하고 순박해 보이지만, 어머니는 담대한 용기를 가진 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배를 피우다가 담임선생님에게 걸려 심하게 맞은 적이 있다. 몽둥이로 얻어맞아 손두께만큼이나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아픔보다 더 두려운 것은 ‘어머니를 불러오라’는 선생님의 요구였다. 맞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늘 가난에 시달리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공부 잘 하는 모범생도 아니었는데, 말썽 피우는 모습까지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에 죄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모기만한 소리로 ‘어~무~이, 선생님 함 보자카던데,,,’라고 얼버무리듯 말하고 돌아서버렸다. 그 정도 작은 소리는 못 들었겠지 싶었다. 선생님한테는 한 대 더 맞더라도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는데도 바쁘셔서 못 오실 것 같다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스쳐지나가는 듯한 내 말을 흘려듣지 듣고 ‘참, 3학년이 되었는데 아들 학교를 아직 한 번 못 가봤네. 바쁘더라도 가봐야지.’하고 집을 나섰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채 학교에 왔던 어머니는 그제야 내가 담배를 태운 문제로 학교에 불리게 온 사살을 알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이 부른다는 소리에 나는 “또 맞겠네”하고 교무실로 들어섰다. 어머니가 서 있는 모습에 고개를 푹 숙였다. 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선생님이 꾸짖기 시작했다.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니가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놈이 담배나 피우냐, 그것도 고3이라는 것이. 쯧쯧’ 하는 식의 꾸지람이었지 싶다.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웠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손을 잡고 교실을 나섰다. 선생님은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내게 ‘너 안 서’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 선생님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내 손을 이끌었다.
선생님 앞에서 ‘흥칫뽕’ 표정을 지으며 쾌재를 불렀다. 그런 뿌듯함도 잠시뿐. 집으로 가는 동안 말 한 마디 없는 어머니가 문득 두려워졌다. 사실 아버지가 더 무서웠다. 아버지가 알면 다리몽둥이가 부서질 수도 있었다. 집에 도착할 즈음 어머니는 “니 아부지한테는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담부터는 그러지 마라”라고 딱 한 마디만 했다.
물론 어머니는 자식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내는 선생님 앞에서 내 기를 살려주기 위해 그런 행동을 보여주셨지 않나 싶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들을 온실에서 키우듯 감싸는 분은 아니었다. 그날 어머니가 보여준 행동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내가 흔들리고 쓰러지려고 할 때마다 오뚝이처럼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큰 어머니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늘 담대하게 살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무너지고 깨어지고 쓰러지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조차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나는 반드시 일어설 것이다’라는 강력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나는 수많은 일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있을 때나, 가까이 살고 있을 때나 거의 매일 하루루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 통씩 안부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는 나의 사회적 활동이나 성취를 진심으로 기뻐하신다. 하지만 이렇게 어머니 자신을 잊지 않고 매일같이 전화 드리는 내 행동에 더 기뻐하는 것 같다. 주변 분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런 어머니 덕분에 어머니가 나를 대하듯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였는가에 대해서 늘 반성하며 살아간다. 가족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과 같이 사랑을 전한다면 지금의 세상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글쓴이 정철상은
인재개발연구소 대표로 대구대, 나사렛대 취업전담교수를 거쳐 대학, 기업, 기관 등 연간 200여 회 강연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진로백서>,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등의 다수 도서를 집필했다. 대한민국의 진로방향을 제시하며 언론과 네티즌으로부터 ‘젊은이들의 무릎팍도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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