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가 아닌 Farewell
오늘 저녁 맥주 한잔 어때?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보글보글 차가운 거품을 내는 맥주잔을 앞에 두고
어딘지 후련해 보이면서도 시원섭섭한 듯 허전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읽으며
뭐라고 해야 좋을지 말을 섣불리 먼저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일한다.
마지막 출근일까지 인수인계를 위해 동료들에게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흐트러지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둔 그녀에게 수고했다고 말하면서도
당장 내일부터 출근할 곳이 없어진다는 그 막막함의 무게를 알기에
섣불리 말했다가 한마디라도 상처가 되진 않을까 싶어 한참을 망설였다.
그녀는 이번에 영향을 받은 구조조정 대상자들과 함께 farewell lunch를 했다고 한다.
내내 덤덤했지만 한 사람씩 떠나는 마음을 담은 소감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지난 회사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고 했다.
그저 개인이 어떻게 조정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서 더 안타까운 것 같다.
그래도 그녀는 회사생활 끝에 남는 걸 확실히 알았다고 했다.
월급통장, 업무지식보다 더 진하게 남은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함께했던 사람들이라고.
사실 나도 똑같은 걸 느꼈었다. 이직을 하더라도 예전 직장동료들 중 이어질 인연은
계속 연락을 하게 된다. 업계가 좁아서 언제 어떻게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잘 맞는 동료들은 퇴사 이후에도 인연이 이어져서 친구가 되고
오늘 이 친구처럼 꾸준히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지내게 되기 마련이다.
맥주잔이 바닥을 드러냈을 무렵,
친구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오늘 그녀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그 말은 바로
새로운 시작을 앞둔 걸 축하해
라는 말이었다. 한 회사에서만 10년 넘게 일해서
아마도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더라면
그냥 계속 지금처럼 아무런 변화 없이 일했을 그녀에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기회들이 오히려 더 나은 포지션과 더 높은 조건일 수도 있고
아직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이기에 기대되는 나날인 거라고
그래서 그런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담긴 새로운 시작에 서게 된 걸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름 프로이직러로서 많은 회사들을 겪어보고 느낀 하나의 사실은
이 세상에 회사들은 많고 수많은 회사들 중 나에게 꼭 맞는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한 곳에서의 구조조정을 두고 스스로를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저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것일 뿐이다.
보통 다들 이런 상황에서는 침울한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상황인데
친구는 이런 나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 새롭기도 하지만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고 해서 어렵게라도 말을 꺼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문이 닫히고 또 다른 가능성의 문 앞에 서 있는 친구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올 그 날,
오늘처럼 맥주 한잔 하러 가야겠다.
그때는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기 위해서.
Cheers to your new adven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