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가방을 끌고 빗 속을 걷다

나도 운전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by 커리어 아티스트

메이크업의 시작은 브러시와 화장품 정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고객 방문 메이크업을 하는 날이면 메이크업에서 중요한 나의 도구들을 손보는 일부터 한다. 코로나 때문에 위생에 더욱 민감하기에 더더욱 세척과 정리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다. 브러시와 화장품들은 각각 보면 작고 가벼워 보여도 메이크업 가방 안에 들어가고 나면 무게가 상당히 무거워진다.


물론 가방 자체가 무거워서 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수 아이템들을 빼놓고 다닐 수도 없기에 무겁더라도 반드시 모두 갖추고 다니게 된다. 하나라도 깜빡하고 안 가져가게 되면 난감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차이더라도 꼼꼼히 갖추는지 디테일의 차이가 나중에 보면 크게 보일 때가 많아서 완벽한 준비는 필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면봉, 휴지 같은 아이템들도 안 가져가서 고객한테 물어보는 건 프로답지 않은 행동이라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싱가포르에서는 신부화장을 할 때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아 세팅롤, 고데기, 머리핀, 헤어스프레이, 장식품까지 챙기게 되면 양손 한가득 짐꾼이 된다.


무거운 메이크업 트롤리를 끌고 택시를 타고 이동할 때면 기사 아저씨가 혹시 공항에 가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어떻게 보면 처음 만나는 고객분의 변신을 돕기 위해 출발하는 설렘은 여행을 가는 기분이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집이랑 먼 곳에 위치한 장소인 경우 싱가포르의 끝에서 끝을 횡단하는 여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택시 안에 있는 시간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메이크업 사진이나 영상들을 검색해 보면서 머릿속으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하기도 한다.


출장지에 도착하더라도 다시 나만의 화장대로 셋업 하는 과정도 역시 오래 걸린다. 가지고 간 화장품과 브러시를 가방에서 꺼내서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울 앞에 놓을 적당한 의자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서서 일하기 때문에 메이크업을 받는 분이 일반적인 높이의 책상 의자에 앉게 되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숙여지는 경우가 많다. 메이크업 스튜디오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의자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출장인 경우엔 그렇게 조절할 수 있는 의자가 갖춰진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메이크업을 하고 나면 구부정한 자세로 오랫동안 집중하느라 허리가 뻐근하고 아프다. 적어도 2-3시간 걸리는 동안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나면 온 몸에 힘이 풀려 하루 종일 뻗어버리기도 한다.


화장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도구들을 사용하는 도중, 고객의 얼굴에 집중하느라 방금 바른 브러쉬를 어디다 뒀지 하고 헤매기도 한다. 마치 숨은그림찾기마냥 수많은 브러쉬들을 눈으로 훑으며 필요한 도구를 찾는다. 모든 화장이 끝나고 나면 또다시 모든 장비들을 다시 패킹해서 짐을 챙겨야 하는 데, 빠진 물건이 있진 않을까 점검하고 또 점검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 혹시라도 깜빡하고 고객의 장소에 두고 오면 나중에 찾으러 가는 것도 난감하기 때문이다. 패킹과 언패킹을 잘하는 것도 출장의 기술인 것 같다.


신부화장은 보통 이른 새벽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새벽에 택시가 안 잡히는 경우는 정말 난감하다. 혹은 메이크업이 끝난 후 폭우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그럴 때 택시까지 안 잡히면 근처 택시를 잡을 수 있도록 큰 길가까지 걸어가야 한다. 비록 우산은 있었지만 한두 개가 아닌 무거운 짐을 한가득 들고 거리를 걷고 있자니 메이크업 가방은 방수라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머리 쪽을 제외한 온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이럴 때면 택시에 의존하기보다는 나도 자유롭게 내 차를 갖고 다니면서 운전을 하고 싶어진다.


매번 완벽한 여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메이크업을 하기는 어렵다. 가끔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지란 생각을 하다가도 메이크업을 받은 분께서 화장이 마음에 든다고 고맙다는 감사의 문자를 주시면 기분이 또 한껏 나아진다. 언젠가는 나만의 스튜디오에서 서울의 유명 메이크업 아뜰리에들처럼 전구 달린 vanity table, 높낮이도 마음껏 조절할 수 있는 푹신한 고객용 의자를 두고 가지런히 정리된 화장품들 앞에서 메이크업 기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본격적인 색조 하기 전에 스킨케어 기초화장은 미리 정돈해주고, 화장품도 정리해주는 어시스턴트도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 쇼핑몰 같은 곳들을 지나다가 스튜디오로 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을 볼 때면, 나만의 메이크업 공간으로 꾸며보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언젠가는 나만의 작업실,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마련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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