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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Jun 17. 2021

재수 없었던 어느 하루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닐 때

내가 사랑하던 산책로 풍경


 근처 초록 초록한 느낌이 가득한 산책로가 있다.


이른 새벽 그리고 노을 지는 산책길 풍경 보면서 걷기 운동을 하는 건 코로나 락다운 시대에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유일한 낙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갑갑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요새 이 산책길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평화로워 보이는 산책로를 걷고 있던 나를 덮친 자전거 사고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났다. 그 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물결이 넘치는 베트남에서도 단 한 번도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난 적이 없었는데 싱가포르의 한적한 산책로에서 사고가 두 번이나 나다니, 운이 지지리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안 그래도 다이어트 동기부여를 받았던 요즘, 집 근처 산책로로 나와서 걷기를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뒤에서 "Watch out!" 하는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심한 충돌이 느껴졌고 몸이 갑자기 어디론가에 끼이는 느낌이 들면서 그대로 땅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나, 그리고 옆에 자전거 바퀴가 뱅글뱅글 굴러가고 있었다.


지난 주에는 자전거가 내 팔과 어깨를 그대로 치고 지나가서 폰 액정이 깨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에 또다시 자전거가, 그것도 정통으로 뒤에서 덮친 것이었다.


눈 앞에서 별이 보일 만큼 아찔했고 팔다리가 욱신거렸다. 자전거 운전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싱가포르 여학생이었는데 나더러 미안하다며 연신 괜찮냐고 물어봤다. 충격 때문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바닥에 앉아있다가 툭툭 털고 일어나 보니 손목과 허벅지, 무릎이 까지긴 했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지난번 자전거 사고 때는 운전자가 뺑소니처럼 아무 말 없이 그냥 쓱 지나가버렸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보상을 요구해야 하는 걸까, 근데 자전거 사고보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난감했다. 미안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뭐라 말할지 한참 망설이다가 그냥 보내줬다. 고의가 아닌 사고였으니까 몸은 아팠지만 되도록 이해하려고 했다. 집에 돌아오니 무릎과 발목이 시큰거리고 퉁퉁 부었고 허벅지와 종아리에는 피멍으로 얼룩덜룩했다.


도대체 왜 자꾸만 자전거랑 부딪히는 걸까. 이번엔 뒤에서 들이받은 거라, 눈이 뒤에 달린 것도 아니며 걸어 다닐 때 백미러가 있는 것도 아닌 보행자인 내가 어떻게 조심하거나 할 방법도 없었다. 그냥 재수가 더럽게 없는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됐다. 아니 왜 길 옆에서 얌전하게 걷는 사람을 자꾸만 치고 다니는 건지 자전거가 정말 싫고 무서운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폰은 가장자리 액정 부분이 깨졌는데 지난번처럼 보호필름이 깨진 거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싶었다.


걷기 운동을 하는 곳은 산책로로 꾸며진 곳인데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지만 요즘 들어 자꾸만 자전거들이 많아졌다. 아무리 그래도 보행자들이 다니는 곳에서 제발 자전거는 안 다녔으면 좋겠는데 따로 그런 법이 없어서 쌩쌩 달리는 자전거들이 많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만약 어린아이가 자전거랑 충돌했다고 치면 아찔하다. 자전거 트라우마 때문에 이젠 더 이상 이 산책길에서 걷기 운동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다이어트 때문에 열심히 걷기 운동하려고 했는데 몸이 아프니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버겁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자전거에 부딪혀서 아프다고 하니 두 딸내미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잠깐 기다리라며 방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장난감 청진기 가져와 다리에 대주더니 아프지 말라고 뽀뽀를 해줬다. 맨날 투닥투닥해서 혼내기만 했거늘, 언제 이렇게 커서 엄마를 위로해줄 줄도 알고, 어느새 자란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기특했다.

절뚝거리면서 걸으면서 어젠 참 재수가 더럽게 없었다고 생각돼서, 사고 당시에는 원망스럽고 욕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또 이렇게 사고 덕분에 (?) 두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자유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플 때 나를 걱정해주는 이쁜 딸내미들과 남편과 같은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새삼 깨달았다.


피멍이 들고 팔다리가 까지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를 다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건지, 그리고 손가락을 다친게 아니라서 이렇게 여전히 글도 쓸수 있으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수술할 정도로 큰 부상이 아닌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한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가 누리는 것에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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