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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Jul 05. 2021

Banh Mi의 추억

베트남 샌드위치 가게를 발견하고

집 근처에 베트남 빵 Banh mi 가게가 생겼다.


Saigon이라는 상호명에서 밀려오는 반가움에 이끌려서 걸어가니, 주인이 베트남 언니인 것 같다. 베트남어 억양이 진하게 묻어난 영어를 하시길래, 나는 편하게 베트남어로 하셔도 된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반가운 미소를 띠며, 나에게 싱가포르로 시집 온 베트남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베트남어가 익숙하다. 한동안 오래 쓰지 않아서 잊어버릴 법도 한데, 어린 시절 배웠던 언어라서 그런지, 조금만 이야기하다 보면 기억 저편에서 숨어있던 단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약 5년간의 시간을 현지 학교에서 보냈던 나는 베트남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도 가끔 베트남 신문을 읽고 베트남 친구들과 대화를. 한다. 한국어와는 달리, 6개의 성조가 있는 베트남어는 말할 때마다 높낮이가 굉장히 다양했던 터라 그때는 참 재미있게 배웠다.


맨 처음 베트남 현지 학교에 등교하던 때가 기억난다.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오고 가는 반미 (베트남식 바게트 빵) 샌드위치를 파는 아주머니로부터 2000동짜리 (지금 한화로 따지면 백 원 정도) 빵을 아침식사로 샀었다. 가끔 시간 여유가 될 때면 베트남 쌀국수를 먹기도 했지만, 바쁜 아침시간엔 역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반미가 더 편했다. 


햄과 각종 야채를 듬뿍 담고 따끈따끈하게 구운 바게트를 들고 오토바이 택시 아저씨 뒤에 타고 등교를 했다. 오토바이의 매캐한 매연냄새, 그리고 동시에 반미의 고소하고 짭조름한 맛을 느끼며 새벽의 상쾌한 공기를 가르고 등교하던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오토바이로 등교하는 그 짧은 시간에도 놀랍게도 많은 것 들을 할 수 있었다. 아침으로 반미를 먹으면서 전날 숙제였던 과제를 중얼중얼 외우곤 했다.


학교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초등학교의 뒷골목에서 베트남 친구들과 소위 목욕탕 의자라고 하는 앉은뱅이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불량식품을 나눠먹으며 (초등학교 근처 불량식품 가게는 국적을 불문한 유니버설 문화인 듯) 이야기하곤 했다. 당시에는 베트남어가 서툴러서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몰랐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맛있는 걸 먹으면서 우정이 싹튼다는 걸, 국적이 다르더라도 친구는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당시 유행하던 세일러문 , 도라에몽 만화책을 빌려주던 베트남 친구들, 베트남어가 서툴렀던 나를 위해 뭐든 도와주려고 하던 착하고 다정했던 내 친구들이 그립다.


주문했던 반미를 먹어보니 어린 시절 등굣길에 먹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싱가포르에서도 베트남 식당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프랜차이즈 형식의 식당은 베트남 특유의 맛과 느낌은 많이 떨어진다. 그래도 이번에 알게 된 이곳은 생긴 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아니면 베트남 언니가 주인이라 그런 건지 제법 베트남스러운 맛이 났다. 오랜만에 싱가포르에서 베트남 오리지널 맛의 반미를 먹게 돼서 좋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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