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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Aug 11. 2021

글을 쓸 수 있는 자격

내 안의 셀프 필터링

한동안 글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주변에 훨씬 더 대단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서

함부로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문가로 포지셔닝하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의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과 자만심의 흐릿한 경계선, 동기부여/자극과 오글거림의 사이의 미묘한 차이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중에 뭔가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 나면, 그때 비로소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조금 더 자신감과 확신에 차서 글도 술술 써지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계속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한계를 제한해두고 나니 가끔씩 글을 쓸 때마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손으로 글을 쓰면서도 뒷단에는 필터링 수십 개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내 안의 검열관의 지적들로 인해 글이 쉽게 써지지 않았다. 어떤 때는 몇 장씩 써 내려가다가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글을 쓰나 하는 마음에 몇 시간 쓴 글을 전부 깡그리 지우고 자체 리셋해버리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쓰고 있다.


갑자기 대단한 사람이 된 것도, 나의 이야기에 확신이 생긴 것도 아니다.

자기 검열은 여전하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이러다가 기억 속에서

전부 다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나중에 더 기억이 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에

내 안의 필터링을 꾹 눌러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하게 지냈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더듬더듬 써 내려가고 있다.

그 당시의 감정, 느낌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도 있지만 점점 흐릿해져 가는 기억들 속에서 헤맬 때도 많다.

자기 검열관 때문에 계속 미뤄두었던 글쓰기였는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끊임없는 자기 검열보다는

지금 보내는 나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고 싶은 게 우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보다는 나 스스로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글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사실 위주의 팩트를 나열하면서 쓰느라 부담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대단한 성공기가 아니라 지금 위치에서 조금씩 발전해가는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니까. 잃어버린 시간들을 다시 되찾는 과정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흑백사진으로 변해버리기 전에 얼른 컬러사진으로 찍고 싶은 장면들을

천천히 글로 담아내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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