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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Aug 23. 2021

책상 위의 트로피

명품 그 너머의 심리

예전 회사에서 투자의 신이 있었다면 반대로 플렉스의 신도 있었다.


회사 팀 막내가 어느 날 못 보던 시계를 차고 왔다. 내가 볼 땐 그냥 투박하게 생긴 시계였는데, 동료들 말에 의하면 오데마 피게라는 스위스 명품시계라고 한다. 명품 시계를 갖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을 그대로 플렉스 했다고 했다. 아니 무슨 손목시계 가격이 그렇게 비싸냐, 잃어버리면 어떡하냐, 굳이 그걸 무리해서 살 필요가 있느냐고 우리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은 욜로, 그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사고 싶은 거 사야지
그리고 남들한테 무시당하기 싫어


손목시계라고 하면 롤렉스가 제일 비싼 게 아닌가 했었는데, 처음 보는 브랜드 중에서도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명품 시계의 세계가 있었다. 20대 때는 전혀 몰랐던 브랜드들이었는데,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들이 드는 물건들의 이름표가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남자 동료들은 시계, 자동차 브랜드지만, 여자 동료들의 경우엔 주로 패션 쪽 명품을 소비하는 모습을 본다. 예를 들면 로저 비비에 구두를 신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샤넬 트위드를 입고, 에르메스 가방을 책상 위에 두는 것처럼.  


출처: pexel

싱가포르 여성들도 명품에 대한 선호도가 강한 편이다. 명품가방 클리닝 샵도 사무실 주변에 많이 볼 수 있다. 내세울만한 겉모습이나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과도하게 신경 쓰는 것에 대해 한때는 얕은 허영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물건들을 가지고 다님으로 인해 남의 시선을 받고, 그 아이템 가격 너머로 그 정도의 가격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경제적 능력을 투영해보게 된다. 명품을 사는 건, 물건 자체에 대한 욕심도 있겠지만 그 물건을 향해 꽂히는 타인의 시선, 그리고 그 너머로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명품을 사는 건 각자 본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기에, 구매 자체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란 판단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열심히 일한 후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고, 그것으로 인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책상 위에 트로피처럼 놓인 명품가방을 두고, 볼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면, 그리고 더 잘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된다면 그것으로도 나름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쓰여진 명품보다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한다. 그래서 명품이 굳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이 세련된 것에 더 끌리는 편이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애초에 그렇게 매력적인 디자인의 물건을 찾기 힘들어서 소비를 별로 안 하게 된다. 명품가방이 있더라도 일 년 내내 덥고 습한 날씨에 부지런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데, 귀차니즘 때문에 그냥 둘 때가 많다. 게으름이 물건에 대한 욕심보다 더 앞서는 듯하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부터 메이크업이나 외출복을 입은 적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가죽 가방보다는 캔버스 천으로 된 에코백이 좋고, 정장보다는 아무렇게나 막 빨아서 입을 수 있는 면 티셔츠가 편하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서 그런 건지 꾸밈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점은 재택근무의 장점이다. 하지만 이제 사무실로 복귀하게 되면 이렇게 마냥 게으르게 지낼 수는 없을 텐데, 그때는 다시 소비욕구가 되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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