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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Sep 01. 2021

버스와 택시 사이

언덕 위의 우리 집

그리운 한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


몇 년 만에 한국어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그 반가운 분은 다름 아닌 택시기사님이다.

처음에 싱가포르에 가고 나서 한국에 귀국했을 때는 부모님이 항상 마중 나오셨다. 입국심사를 다 마치고 자동문이 열리면 보고 싶었던 부모님 얼굴을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물론 좋았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밤늦게 출발하는 비행기가 보통 한국시간에 새벽 이른 시간에 도착했던 지라 너무 고생스러우실까 봐 점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초창기에 한국으로 귀국했던 시절엔, 항공편도 프로모션 특가가 아닌 티켓은 사지 않았다. 비행기표뿐만 아니라 어떻게라도 돈을 한 푼이나마 아끼려고 시내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물론 공항버스가 우리 집 앞까지 가는 건 아니고, 내려서 또 마을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야 우리 집이었다. 공항버스는 그렇다 치고, 밤새 비행기를 타고오느라 꾀죄죄한 모습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마을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할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한국에 오면 꼭 택시를 타는 호사를 누리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고 이제 한국에 귀국하면 택시 승강장을 향한다.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기보다는 체력이 달리고 피곤해서 그냥 택시를 타는 이유가 되었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창밖 풍경을 바라보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웠던 한국의 풍경을 마음 편하게 바라보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한국어로 된 방송을 들으며 여유 있게 집에 도착하는 여정은 감동적이었다. 낑낑거리면서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너무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집으로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우리 집은 당시에 좁고 후미진 언덕 위에 있었다. 언덕 위 비탈길을 오르느라 한 번은 어떤 택시 기사님이 뭐 이렇게 차 돌리기 어려운 동네로 오게 하냐며 짜증 섞인 말을 던지셨다.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말을 나눌 수 있는 반가운 분이 택시기사님인데,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무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몸이 좀 피곤하더라도 그냥 버스를 탈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는 왠지 또 그런 말을 듣게 될까 봐, 그냥 큰 길가에 세워달라고 하고 짐을 끌고 언덕 위를 오르곤 했다. 


싱가포르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거의 없었는데 한국에서는 아니었다. 택시기사님의 불평 어린 말을 들으면서, 나중에는 꼭 차를 대기가 좋은, 번듯한(?)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소를 이야기할 때마다 혹시나 또 불편하시면 어떻게 하나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우리 집 주소를 조금 더 당당해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한국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차 간 것이었기에 목적지는 집이 아닌 서울 남산에 위치한 고급 호텔이었다. 산 중턱에 있는터라, 똑같이 언덕 위를 올라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언덕 위를 올라야 해서 불편하다는 불평은 들을 수 없었다. 


지금은 친정집이 이사를 하셨지만, 그래도 가끔 옛날에 살던 동네를 지나칠 때면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오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버스로 가던, 택시로 가던 오랜만에 보고 싶은 부모님을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 하나는 변함없던, 짐가방은 무거워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만은 가벼웠던 20대의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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