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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Sep 25. 2021

나를 디톡스 하는 시간

일상의 행복을 감사하는 시간



100일 동안의 다이어트 도전을 결심했지만, 나의 상황은 썩 다이어트를 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작은 아이의 유치원 친구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 같은 공간에 있어서 간접 접촉이 있었다는 이유로 현재 우리 가족 모두는 Quarantine order, 즉 자가격리 중이다. 어제는 온몸에 보호장비를 하고 PCR 스왑 테스트하시는 분이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작은 아이의 그 작은 콧구멍에 면봉같이 생긴 테스트 기구를 넣는데 울먹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싱가포르 보건부에서 서류도 전달받았는데 자가격리 규칙을 위반하고 집 밖으로 외출할 경우엔 벌금 10000 싱가포르 달러 (약 870만 원) 또는 6개월 징역형까지 갈 수 있다는 살벌한 문구를 보았다. 역시 강력한 법의 나라 싱가포르다.


따라서 자가격리가 풀리는 다음 주까지는 꼼짝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 바로 주스 디톡스였다. 얼마 전 지인이 주스 디톡스를 하면서 2킬로 정도를 감량했다는 소식에 나도 한번 해볼까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계속 미루던 참이었다. 집콕을 하게 되면서 끼니때마다 밥을 챙기기보다 그냥 주스로 해결하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니, 아이들 밥은 챙겨주더라도 나와 신랑 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간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 나와 신랑의 주스 디톡스 3일 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1일은 하나마나인 것 같았고 5일 도전은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신랑도 요즘 살이 쪄서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지라 흔쾌히 도전에 합류했다. 


그렇게 첫 주스 클렌징 프로그램 패키지가 도착했다. 3일 치라도 신선한 주스가 중요하다며 매일마다 배달을 오셨다. 하루치 프로그램에 주스 6병에 알약 2개가 있었다. 알약은 소화와 배변을 도와주는 약이라는 설명이 보였고, 주스는 알록달록 색깔로 병마다 제각기 다른 맛을 갖고 있었다. 주스 6개를 2-3시간 간격으로 마시는 것이었는데 첫 주스는 수월하게 마셨다. 오렌지랑 파인애플 맛이 나는데 꽤 마실만했다. 점심때는 비트루트랑 크랜베리 맛이 나는 주스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샐러리랑 사과맛이 나는 주스, 건강함이 가득 느껴지는 맛이었다. 이 정도면 3일은 거뜬하겠는데, 5일짜리 시킬걸 그랬나 하는 대범한 생각을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점점 저녁이 다가오고 계속 액체 주스만 마시다 보니 뭔가 씹을 수 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 졌다. 게다가 아이들 식사를 챙겨주느라 요리를 하면서 나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한 입만 먹어볼까 하다가 딱 3일만 참자라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다이어트고 뭐고 그냥 먹어버릴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고작 3 일한 다고 살이 얼마나 빠지겠어, 김치찌개랑 삼겹살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부엌을 왔다 갔다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며 신랑은 이 정도면 참을만하다고 3일까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디톡스인데, 나와의 약속을 어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스 양이 많아서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씹어 넘길 수 없는 허전함이 더 느껴졌다. 평소에 내가 즐겨먹었던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는 행복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디톡스를 하면서 나를 절제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앞으로 남은 2일 동안에도 수많은 유혹들이 있겠지만, 이미 하루를 성공했다는 자신감으로 나머지 2일을 무사히 보내고 싶다. 이번 디톡스가 끝나면 한동안 주스는 질려서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무심코 입에 넣던 군것질거리를 멀리하고, 제한된 환경 안에서 나를 절제하고 비우는 걸 배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는 도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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