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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Oct 12. 2021

그렇게 굳은살이 조금씩 박혀간다

프로 삽질러의 실패 경험

싱가포르에 올 무렵부터 쓰기 시작한 나의 이메일 함.


만약 이 메일들이 전부 종이로 된 편지여서 직접 분류를 할 수 있다면, 아마 합격이나 통과라는 반가운 소식보다는 불합격이나 탈락이라는 소식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탈락 메일들을 종이로 쌓아둔다면 적어도 내 키만큼, 아니면 그 보다 훨씬 더 높이 쌓였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도전을 좋아하는 것이 때로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이루어지는 거라서 결과가 미흡하거나 완벽성을 갖추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탈락소식들이 나에게는 다시 시도할수 있는 용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얼마 전 응모했던 공모전 1차가 합격된 후, 2차는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함께 1차에 오른 후보작들이 워낙 쟁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김새는 느낌은 피할 수 없었다.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탈락했으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내 안에서 들린 목소리 :


뭐 어때, 어차피 기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잖아.
나중에 다시 도전하면 되지,
나는 프로 삽질러니까


프로 삽질러, 왠지 모르게 어설픈 아마추어의 또 다른 말이자, 언젠가는 프로가 되고 싶은 열망을 담은 단어 같기도 하다. 프로 삽질러에게 실패나 탈락이란 경험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필수 코스인것 같다. 열심히 삽질하면서 허탕을 칠 때도 많지만, 삽질을 하다 보면 언젠가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미련한 삽질을 멈추기도 힘들다.


돌이켜보면 한 번의 시도로 성공을 했던 경험은 별로 없었다. 항상 여러 번 꾸준히 시도하고 노력한 끝에서야 비로소 희망의 틈새가 조금씩 보였다. 처음에 회사일을 시작하면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 치열한 업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도 그냥 취미로만 만족해야 했나, 프로 아티스트로는 역시 소질이 없나란 생각에 좌절하기도 했다. 한 번에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성공하는 천재가 아니라는 팩폭에 좌절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천재가 아니니까 여러 번 시도해볼 수 있다는 배짱과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도 비슷한 좌절을 느낀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브런치 플랫폼에만 해도 본인 스스로를 아마추어 작가라고 칭하시는 겸손하신 분들이지만, 내 눈에는 이미 훌륭한 문인이자 닮고 싶은 필력을 가진 작가님들이 많다. 책에서 나는 은은한 종이 냄새를 좋아해서 서점에 가면 이미 책을 내신 수많은 작가님들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는 엄연한 간극이 있구나, 잘하는 것에 도달하려면 역시 멀었구나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렇게 실패의 경험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분명 얻는 점도 있다. 탈락에 대한 실망감과 다음에 다시 해도 된다는 희망이 뒤섞인 채로, 마음 근육에 굳은살이 조금씩 박혀간다. 계속해서 다시 도전하는 근성이 생기기도 한다. 한 번에 성공한 적이 없었지만,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과 성취감은 배가 되는 것 같다. 소설책을 읽더라도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훨씬 더 흡입력이 강하고 재미있듯이, 한 번에 잘 되는 건 매력이 없으니까. 그리고 굳이 성공을 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마음의 굳은살이 박히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훈련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면서, 새로운 시작을 할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넘어지더라도 언제든 툭툭 털고 일어나 도전할 수 있는 "프로 삽질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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