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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Nov 14. 2021

상상의 친구, 찰리

한글학교의 딜레마

드디어 자가격리가 끝났다.


마지막 PCR검사는 콧구멍 두개에 모두 면봉을 넣다가 빼는 것이었는데 매우 천천히 정성스럽게 해주시더라는.ㅠㅠ 근데 이것도 아팠다. 그냥 빨리 빼주시지 너무 느릿느릿 넣었다가 빼셔서 답답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한국보다는 싱가포르가 더 아팠.

 

그래도 이제는 집안에서만 틀어박히지 않아도, 밖으로 탈출할수 있어서 감사한 일상이다. 가격리 해제 첫날 오늘도 여느때처럼 주말에 가는 한글학교를 데려다주고 왔다.


한국어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주말마다 가는 한국학교는 다른 과외활동들보다 우선순위였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딸아이가 자꾸만 가기 싫다고 했다.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것이 아닐까, 게으름을 피우면 안되는거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오늘은 하교하는 길에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엄마, 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알아듣겠어.
친구들도 자꾸만 날 괴롭히구,
난 그곳에 가면 상상의 친구 찰리랑 같이 그림그려요


상상의 친구라니...이건 무슨 말인가.


한국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는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찰리라는 친구까지 등장하다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게다가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짖궂게 놀리고 괴롭히는 남자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사실 로컬학교나 학원에선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피드백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냥 주말에 집에서 놀고싶은 아이의 핑계거리가 아닐까 했었는데 매주 억지로 끌려가듯 학교로 향하는 아이를 보면서, 한국학교에 보내려는 나의 의지가 그저 엄마의 욕심이 아닐까란 생각 들었다.


영어와 중국어 이중 언어만으로도 아이는 이미 충분히 바쁘고 힘들텐데, 한국어까지 어떻게든 구겨넣고싶은 엄마의 욕심이랄까. 시무룩한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이번엔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한국어를 포기해야하는걸까. 내년 학기 등록시기가 다가오고있는데 많이 고민이 된다. 사실 한국학교에 굳이 다니지 않더라도 집에서 꾸준히 엄마가 한국어를 사용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한국어도 곧잘 한다. 결국엔 엄마의 노력에 달린 문제인데 일주일에 한번이나마 한국 문화 체험 차원에서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가 상상의 친구까지 언급하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억지로 계속 보냈다가 오히려 한국어가 싫어지는 부정적인 역효과가 날까봐. 엄마로서 원하는 건 그저 한국문화를 즐기고 한국어로 대화만 가능할수만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인데, 아이가 생각보다 많이 스트레스를 받던 것 같아서 미안해진다. 내년에 혹시라도 친구들과 선생님이 바뀐다면 좀 나아질까, 그냥 일시적인 현상인걸까 하다가도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건 전혀 원하지 않기에 계속 고민이 된다. 그냥 이대로 놓아버리는게 맞을까.


한국어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아이의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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