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필드형 공부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면 객관적으로 증명된 어떤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상경계 전공이 아니었던 내가 금융권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을 때 경제나 경영학 석박사 출신의 동기들을 보면서 아직 나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된 어떤 프로그램을 거치고 나면, 그래서 증명서, 학위를 갖고 나면 그 갈증이 좀 풀어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실력이라는 것을 공인된 기관에서 제 3자가 인증해주고 증명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금융이 아닌 웹 3.0 새로운 세계의 입성을 앞두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이 갈증이 심하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새로운 도전에서 잘 해내고 싶다는 의욕은 충만하지만 모든 것이 외계어로 들려서 답답하고 막막했던 상황 말이다. 전통 금융이야 기존 시스템에서 이미 마련되어있는 자격증이나 학위 프로그램이 많이 있지만 이 분야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해서인지 뭔가 인증하거나 시험을 봐서 패스할 수 있는 증명서 같은 것이 많지 않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과거의 지식을 토대로 하는 것인데 변화의 속도도 너무 빠르기 때문에 생각만큼 크게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지난주에 새로 조인할 회사에서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과의 회식이 있었다. 나와 함께 같은 팀에 조인하게 될 친구는 블록체인 관련한 미국 명문대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한다. 그걸 들어보니 과연 진짜 도움이 많이 되는지 기대에 차서 물어보니, 그녀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초적인 개념을 잡기엔 나쁘지 않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이론과 실전은 많이 다르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이 훨씬 빨라서 그다지 획기적인 변화를 느끼긴 어려웠다고. 여전히 어렵지만 사내 트레이닝을 통해 계속 익숙해지려고 한다고 했다.
앞으로 나의 상사가 될 분에게도 질문을 했다. 잘 해내고 싶은 의욕은 넘치는 데 너무 새로운 분야에다가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 사이에서 헤매는 느낌이라고, 다들 어렵다고 하던데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까요라고. 그분은 이 세계에 따로 교과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최대한 사람들과 많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 대화를 통해서 배우라고, 그리고 실제로 일을 진행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차피 이 분야의 전문가는 많지 않고 직접 발로 뛰면서 배워야 한다고.
요즘 필드형 전문가 시대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증서를 위한 공부나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진짜 실력을 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학위가 자격요건으로 무조건 필요한 전문직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외의 경우엔 사실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살아있는 생계형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식을 누군가가 가르쳐 주길 수동적으로 기대하기보단 내가 능동적으로 직접 부딪히고 발로 뛰며 깨우치는,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공부. 어떻게 보면 기존 시스템에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실력을 스스로 정의하는 것, 내가 스스로 개척해나가면서 주도적으로 배우는 것이니까.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느껴지던 막막함도 있긴 하지만 앞으로 현장에서 생생한 경험을 통해 쌓게 될 실질적인 공부를 기대해 봐야겠다.
경험이 경력이 되는 시대에 살고있는 지금, 어차피 완벽한 준비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