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 날 지하철을 탔다가 익숙한 안내 방송을 듣고 하마터면 래플스 플레이스 역에서 내릴뻔했다.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와 비슷한 느낌의 금융가 중심이 바로 싱가포르의 래플스 플레이스 지역이다.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냈던 회사들이 전부 이 동네에 위치해있어서 너무 익숙한 곳인데,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역 이름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내릴 뻔했다. 이제 다니는 새로운 회사는 더 이상 이 역이 아닌데 말이다.
나의 예전 동료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기로 했는데 아직도 한창 적응 중이라 점심시간이 여유 있지 않아서 아직 연락을 미처 하지 못했다.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문득 동료들이 보고 싶어 졌다.
래플스 역에 쌓은 추억들도 많다. 취업준비 중이던 시절,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빌딩 숲을 보면서 언젠가 이런 곳에서 정장을 입고 다니는 커리어우먼이 될 거란 꿈을 키우기도 했고, 취업을 하고 난 이후에는 야근하고 나오면서동료들이랑 근처에서 맥주 한잔을 하면서 수다를 떨던 공간이기도 했다.
역 근처에 위치한 신문을 파는 갑판대에도 특별한 추억이 있다.싱가포르 잡지에 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을 때 그냥 웹사이트에 내 사진이 나온 걸 보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어차피 중국어 잡지라서 한자 알못 문맹인 나는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동료가무슨 소리냐며 자기가 번역해줄 수 있다며 나의 손을 잡아끌고 신문 갑판대로 향했다. 그러더니 그 잡지를 사다 주면서 이런 건 기념으로라도 간직해야 한다면서 본인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어느덧 새로운 곳에서 일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경력은 오래되었지만 업종이 달라 신입사원 같은 느낌으로 다니는 중이다. 매일 고군분투하면서 지내느라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 네트워킹 미팅 때 업계의 다른 회사 사람들과 만났는데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알고 보니 나의 첫 회사의 후배였던 것이다. 그도 금융계에서 이 업계로 이직했다고 너무 오랜만이라고 반가워했다. 첫 직장동료를 10년 넘게 못 보다가 만난 자리라 마치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는 이미 이 업계에 온 지 꽤 되었는데 지금 막 시작하는 나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아마 후회가 없을 거라고,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격려해주었다.
흔히들 사회생활을 한 이후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동료들은 동료일 뿐, 학창 시절 친구처럼 되기 어렵다고 한다.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무적으로 대하게 될 때가 많다. 직장동료와는 공과 사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현명하단 이야기가 담긴 자기 계발서도 많다. 그런와중에도 예전 직장 동료들 중 일부는 여전히 나에겐 동료 그 이상, 우정을 쌓은 친구들 같다. 비록 사회에서 만났지만 마음이통하고 좋은 추억을 쌓은 분명 정든 친구들이다. 새로운 곳에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 꼭 다시 만나러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