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만남
오래전부터 나의 글을 읽어왔다는 분과 만났다.
같은 싱가포르, 같은 엄마, 같은 워킹맘이라는 백그라운드라는 공감대가 있어서일까, 대화를 하면서 금방 친밀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공감해주시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감동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읽어주는 사람이 한분이라도 계신다는 것으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엄청난 필력을 가진 작가도 아니고,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글에 묻어나도록 써 내려가는 것인데, 공감해주는 분이 계신다는 것이 위안이 되는 것 같다. 벽보고 혼자서 주절거리는 독백이 아니라, 소통하는 대화 같아서 반가웠다. 대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어서 짧은 기록을 이어가 본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요즘의 저는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대화 중에 그 분이 하신말씀이었는데 너무나 공감했다. 항상 일벌이기 대마왕인 나 역시 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다. 아니 현재도 갖고 있다. 여전히. 매년마다 달성해야 할 버킷리스트, 마일스톤, 투두 리스트가 빼곡하게 채워져있지 않으면 불안감이 몰려왔다. 대학원 도전을 했던 시절부터 시간을 쪼개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셋업 해두지 않으면 마치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듯한 느낌, 마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초조했다. "What's next?"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스스로를 재촉하는 것이 나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번아웃이 되면 사실 어차피 모든 것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계속해서 일을 벌이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목표가 없다는 것은 사실 게으른 것이 아니라, 따로 목표로 삼을 게 없을 만큼, 지금 현재에 만족한다는 뜻이고, 그만큼 이미 나는 너무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계속 질문하기보단, 지금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 만족감, 충만함에 잠시 머물러도 괜찮다. 그렇게 만족하면서 살다 보면 또 어느 순간 하고 싶은 일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꼭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지 않아도,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변 풍경을 돌아보는 가운데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굳이 목표를 억지로 만들어 내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요즘의 나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그렇다고 아예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 역시 여전히 익숙지 않아서 매우 작은 것부터 해내는 small win을 하는 루틴 셋업에 집중한다. 새벽 기상하기, 아침에 걷기 운동하기, 학교를 데려다주면서 아이와 대화하기, 그리고 글쓰기와 같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이루고 달성하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열심히 사는 동기부여로서의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나 자신과 하는 대화다. 거창하거나 대단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있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해낼 때마다 나에게 칭찬을 해준다. 엄마로서, 회사원으로서, 딸로서 해야 할 모든 역할들에 넌 이미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아낌없이 격려를 보내고 칭찬을 한다.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내가 한 노력들을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지 않고, 마치 다른 사람을 향하듯 나를 대한다. 오글거리더라도 나 스스로를 토닥토닥해주는 말 한마디의 힘이 작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해냈구나.
정말 대단해.
참 잘했어.
기특하다.
뭔가 진부해보이는 칭찬 한마디지만 은근히 위로가 된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스스로를 아껴주는 말 한마디에 힘을 얻는다고 해야할까. 나의 노력들이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라는 걸 다시 되새기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원고 마감 날짜가 다가오고 있어서 사실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하는 요즘이라 제대로 집중해서 글을 마무리해야 하긴 하지만 이렇게 편안한 아무 말 대잔치스러운 비공식(?) 글을 쓸 때 어쩐지 자유로운 글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오늘도 글 한편을 마무리한 나를 칭찬하며, 나의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과의 만남 덕분에 이렇게 글을 써볼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