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대한 확신
얼마 전 한 은행으로부터 디지털 애셋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아서 오랜만에 예전 직장이 있던 금융가로 방문을 하게 되었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으리으리한 빌딩, 건물 내 은은한 방향제 냄새, 정장차림의 직장인들로 붐비는 빌딩 로비에 들어서자 마치 한동안 휴가여행을 마치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평범했던 일상 속의 풍경이었는데 전혀 다른 업계에서 일하다 오니 익숙하기도 하면서 낯설게 느껴졌다.
마켓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만약에 내가 그때 이직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당시에 선택의 기로에서 있을 때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은 결국 새로운 도전이었다. 전혀 다른 분야였기에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고, 내성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기에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자리들도 컴포트존에서 일부러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몰아치는 일들을 마주하면서 쉽지 않은 순간들을 지나다 보니 결국 최근엔 건강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휴식을 가지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한국 방문을 하는 동안에는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났다. 친구들은 여전히 바쁜 직장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잠시 쉬러 왔다는 나의 말을 듣던 중 한 친구가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니? 원래 하던 일 편하게 하지."
한 직장에서 계속 장기근속하는 친구의 눈으로 보기엔 가만히 안주하지 않고 사서 일을 벌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니 과연 바보 같은 선택을 했던 것인가 다시 지난 1년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을 그 시간 동안에 내가 이루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읽어봐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던 외계어스러운 기술 관련 문서들이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것, 수많은 강연, 패널 등등의 기회들 앞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하나씩 해나가다 보니 이제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예전 직장에서도 연사로 초청을 했다는 점이었다. 만약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이런 변화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
비록 사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겐 분명 게임체인저로서의 의미가 컸다. 회사의 명함 뒤에 숨지 않고 나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시간이었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단지 골골대는 체력이 아쉬울 뿐, 건강을 회복하려면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또 어떤 다른 기회들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에 어렵게 한 나의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나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1년 전 스스로가 고맙다. 전혀 몰라서 막막했고 주변에서는 굳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기꺼이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자 했던 1년 전의 나다움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