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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 아티스트 Mar 16. 2024

열심히 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충 살아도 괜찮다는 믿음

얼마 전부터 기력이 하나도 없음을 느꼈다.


분명 간밤에 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일어나고 나면 활기참보다, 어제도 끝내지 못한 일들에 파묻힌 채 이미 지쳐있는 상황에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는 기대감보다는 한숨이 먼저 절로 나왔다. 에너지가 축 쳐지다 못해 끊임없이 땅밑으로 꺼져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곰 한 마리가 어깨 위에 얹혀있는 듯한 피로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처음엔 그저 체력의 문제라고 여겼다. 잦은 출장으로 인한 피로감, 운동부족, 루틴의 깨짐 때문에 에너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만 생각해서 이 부분을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갖은 영양제를 아침마다 한 움큼씩 집어삼키고, 피로회복제도 주구장창 먹어보고, 잠을 조금 더 오래 자보려고 하고,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산책을 나가보았지만 별로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예전에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수많은 번아웃 증상이라고,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그냥 지나갈 것이라고만 여기기엔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되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서 생긴 노화현상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서 의욕이 넘치던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들에 파묻힌 채 짓눌려있다는 느낌이 계속되자 조급함이 생겨났다. 하루를 마치 48시간 이상처럼 살고 있는 것처럼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내곤 있는데, 성취감보다는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까.

 

생각보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능력의 한계라기보단 "에너지"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체력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육체적인 에너지도 중요하긴 하지만, 마음의 에너지도 못지않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출장으로 인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지내지 못해서 생기는 죄책감,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바쁘게 살면서 정작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란 고민 또한 나의 에너지를 소진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외면의 에너지뿐만 아니라 내면의 에너지도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직러로서 다양한 회사들을 거쳐온 만큼, 적응기간의 여유보다는 나는 스스로의 실력을 최단기간에 증명해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는 편이라 나는 그동안 "열심히"라는 단어에 굉장히 큰 의미부여를 해왔고 성실함이라는 가치에 충실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성실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쩌면 미련함이나 무식함이란 뜻과도 연결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앞만 보며 열심히만 하다가, 정말 내가 원하는 행복한 일상의 작은 소중함들을 지나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youtu.be/wPIm4cDTPO0?si=lPosgetz5fMVYidu


오늘 산책길에서 우연히 들었던 유튜브 영상에서도 요즘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 공감하면서 들었다. 특히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근본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히는 연습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세상 일을 모두 내가 컨트롤할 순 없기 때문에, 흐르는 대로, 순리대로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냥 대충 살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세상의 멸망이 오지 않는다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는 연습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불안해하거나 능력을 증명해 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그동안 잘해왔기 때문에, 나답게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 겠다고 다짐했다. 능력을 증명해내고 인정을 받는 것은 굳이 외부사람부터 받지 않아도,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받는 인정으로 이미 충분히니까 말이다.


얼마 전 새벽 필사 인증을 늦잠을 자는 바람에 깜빡 놓쳤던 적이 있었다. 전날 피곤해서 퇴근하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는데 화들짝 놀라서 깨어보니 새벽 5시가 지난 것이었다. 알람을 못 들은 나를 자책하고 꾸짖느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인증은 사실 하루정도 놓쳐도 괜찮았다. 늦잠 잔 스스로를 미워하고 못살게 굴만큼 그렇게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증시간이 지나서 포기하지 않고 오후에 여전히 필사를 마치고 해냈다는 끈기였다.


열심히 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때로는 되는대로 대충대충 살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유를 주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한창 다이어트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어도 평생 닭가슴살에 샐러드만 먹고살 수는 없었다. 때로는 라면과 떡볶이로 배를 두드리며 행복한 탄수파티 치팅데이를 가져야만 숨이 쉬어졌다. 목표한 체중을 조금 늦게 달성하더라도, 쉬어가는 치팅데이가 인간적으로 필요했다. 극단적인 식단으로 끝까지 몰아가다간 결국 식탐이 폭발해서 그냥 포기하기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냥 대충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열심히와 대충의 강약을 조정하면서 밸런스 있는 삶을 사는 것도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를 롱런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면 그리고 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건강한 체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번 주말에 조금 느긋해진 나를 너그럽게 봐주는 마음 챙김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그냥 내려놓아도 세상이 멸망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의미에서 오늘은 가족들을 데리고 나가서 예전부터 먹고 싶었던 딤섬 런치를 가줘야겠다. "열심히" 일하느라 평일을 충실하게 보낸 나에겐, 주말에는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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