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대로 한다는 것
"어딜 가더라도 항상 지금처럼,
바르고 단정하고 예의 바르게 하면 돼."
마지막 금융권에서 이직을 한다고 했을 때, 당시 상사분께서 해주신 말이었다. 전혀 다른 업계로의 이동을 걱정하시면서도 어디서든 기본을 지키면 된다고 격려하시던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도 항상 최고 실적을 달성하시던 상사의 조언을 들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해온 업무 스타일에 확신을 갖고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보통 능력 있는 세일즈맨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던 모습은 활달하고 사람들을 좋아하며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외향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MBTI로 보면 I 중에서도 극 I에 해당하는 내향적인 나는, 세일즈 하기에 좀 안 맞은 걸까란 고민을 초반에 하기도 했다. 성격을 바꿔야 하는 걸까,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활달한 척을 시도해보려고도 했지만 억지로 내가 아닌 다른 성격으로 바꾸는 건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넌 항상 너무 FM이야,
너무 원리원칙대로만 하려고 해."
쉽지 않은 신흥시장을 맡았을 때, 생각처럼 딜이 쉽게 따지지 않았을 때 고민을 하던 때였다. 당시 사업을 하던 친구는 나에게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고, 다른 경쟁업체들이 하는 것처럼 접대도 해야 하고, 진짜 딜은 공식적인 미팅시간 뒤에서 이루어지는 거라고, 너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쉬운 길을 두고 왜 굳이 어렵게 돌아가려고 하냐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친구 말대로 보수적이고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 또한,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모습인가, 세일즈에 맞지 않나라는 물음표가 생기기도 했지만, 역시 내가 아닌 다른 방식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비록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으로서 시간이 꼭 필요한 당연한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빨리 성과가 나지 않을 때면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스스로를 믿고 그대로 지금의 스타일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어제 컨설팅 팀 동료와의 미팅시간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투자은행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온 영국인인 그는 똑똑하지만 무뚝뚝하고 칭찬에 인색한 사람으로 사내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시간낭비를 굉장히 싫어하고 날카로운 그의 질문을 대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미팅 때도 항상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제 나에게 했던 첫마디는:
"사람들이 왜 널 능력 있는 세일즈맨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세일즈맨은 정말 흔치 않거든"
컨설팅 팀과의 협업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점과 수많은 이해관계들로 얽힌 건을 대하게 된다. 예민한 건에 대해서 딜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해답이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씩 풀어가는 기분으로 일을 해야 한다. 특히 금융과 테크가 융합된 새로운 프로덕트로 아무도 해보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부분은 새로워서 일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까다롭고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매번 미팅 때마다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조심스러웠는데, 무뚝뚝한 그의 예상치도 못했던 칭찬 한마디에 굉장히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나는 변하지 않고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나의 스타일을 보는 시각은 사람들마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단정하다고, 어떤 사람은 너무 고지식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능력 있다고 평가했다. 여러 피드백을 받으면서 내린 결론은 좋은 세일즈에는 단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세일즈 기술이 있다. 꼭 외향적이어야지만 좋은 세일즈가 아니고 외부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스타일을 늘 한결같이 유지하면 된다는 걸 깨닫는다.
억지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분명 나이기 때문에 해낼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외향적이진 않고 조용해도, 잘 경청하고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꼼꼼한 팔로우업을 하는 것, 항상 예의 바르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시간 약속에 절대 늦지 않고 10분 먼저 도착하는 기본, 미팅 전에는 미리 사전 숙지와 조사를 하는 준비성, 쉽게 지나치고 놓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챙기는 세심함 등등, 그동안 신뢰를 쌓았던 모습들을 스스로 칭찬해 보기로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작은 것들이 쌓여서 신뢰가 쌓이는 법이다. 나에 대한 의심 대신,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면 결국 성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해 왔으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기본에 충실한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타인의 평가보단 내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가 더 중요하니까, 가끔 힘들거나 번아웃이 오더라도, 비록 느리지만 단단하게 신뢰를 쌓는 것에 집중해서 나의 방식을 믿고 지금처럼 내안의 중심을 잡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