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2. 커리어 실전 트레이닝 루틴 ②
"회사라는 배경을 지우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난 화 마지막에 던졌던 이 질문, 혹시 마음 한구석에 계속 맴돌지는 않으셨나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입 밖으로 대답하려니 턱 막히는 기분. 저 역시 오랫동안 그 침묵을 경험했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우리가 이 질문 앞에서 작아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동안 나를 설명하는 방법을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곳'으로만 학습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A사 마케팅 팀장입니다.”
“B사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대답입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 이것은 나의 본질이 아니라, 퇴사하는 순간 증발해 버릴 '소속'일뿐입니다.
실험실(회사)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실험을 주도하는 ‘나’라는 알맹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남아야 합니다. 이번 화에서는 회사가 사라져도 시장에서 통용되는 단단한 한 줄의 정체성, 즉 ‘업(業)’을 정의하는 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정체성의 착각 : '안전'해서 더 '위험'한 소속
그렇다면 우리는 왜 본능적으로 '업(Identity)'이 아닌 '소속'을 먼저 내미는 걸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구구절절 나를 설명할 필요 없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 간판과 직함 하나면 상대방을 바로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편리함'이 바로 함정입니다. 편리함에 기대어 나를 정의하는 일을 미루는 순간, 나는 그 회사 안에서만 유효한 사람이 됩니다. 회사가 사라지거나 명함이 없어지면, 그동안 쌓아온 경험마저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회사 밖으로 나와서야 당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회사 이름 빼면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뭘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이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체성을 ‘업무’가 아니라 ‘소속’으로 증명하는 방식에만 익숙해진 탓입니다.
정체성 전환 : 회사원이 아니라 '전문가'로 사고하라
시장에서 커리어 지속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직무 또는 직책(Job Title)이 아니라 업(Profession)으로 정의합니다.
이 작은 차이가 사고의 기준을 완전히 바꿉니다.
[소속 중심] "저는 ○○회사 대리입니다" (X)
회사가 사라지면 나를 설명할 언어도 함께 사라집니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 가능한 '부품'이 됩니다.
[가치 중심] "저는 ○○한 문제를 ○○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O)
회사가 바뀌어도, 직급이 달라져도 내 본질은 유지됩니다. 시장 어디서든 통용되는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한 줄의 업(業)입니다. 직함 중심의 사람은 ‘이 회사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만을 고민하지만, 업 중심의 사람은 회사가 바뀌어도, 직급이 바뀌어도, 심지어 산업이 바뀌어도 유효한 나만의 본질을 고민합니다. 그것이 바로 시장 어디서든 통용되는 '나만의 전문성'이 됩니다.
'한 줄의 업(業)'이 필요한 진짜 이유
‘업’을 정의하는 건 단순히 멋진 자기소개를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한 줄은 험난한 커리어 여정에서 나를 지탱해 줄 가장 단단한 중심축이 됩니다.
이 기준이 없으면 우리는 늘 외부 환경에 휘둘립니다. 연봉이 조금 더 높은 쪽으로, 이름이 더 유명한 회사로, 남들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방향으로 휩쓸려 다니게 되죠. 하지만 나만의 '업'이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선택의 기준이 회사가 아니라 ‘나의 성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전 적용 : 나만의 '한 줄 업(業)' 만들기
그렇다면 이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막연히 “열심히 합니다”, “성실합니다” 같은 말은 시장에서 아무 힘이 없습니다. 다음 3단계를 통해 나만의 언어를 찾아보시길 권장합니다.
1단계 : 흥미 × 요청 × 성과의 교집합 찾기
내 안의 데이터를 꺼내볼 차례입니다. 아래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고, 그 교집합을 찾아보세요.
흥미 :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가?
요청 : 동료들이 나에게 자주 부탁하거나 물어보는 일은 무엇인가?
성과 : 내가 만들어낸 결과 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칭찬받았던) 것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지점이 바로 당신이 이미 반복해서 증명해 온 영역입니다. 아직 언어화되지 않았을 뿐, 당신의 업은 이미 그 안에 있습니다.
2단계 : ‘한 줄 공식’으로 언어화하기
이제 찾은 재료를 하나의 문장으로 조립할 차례입니다.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아래 공식에 그대로 대입해 보세요.
"나는 [대상]의 [문제]를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하여 [가치]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닙니다.
경력기술서의 핵심 요약이자, 앞으로의 커리어 방향을 정렬해 주는 강력한 프레임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예시 1]
(기존) 인사팀에서 조직문화를 담당합니다.
(변경) 나는 [조직]의 [낮은 몰입 문제]를 [구조화된 진단과 코칭]으로 해결하여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예시 2]
(기존) 콘텐츠 마케터입니다.
(변경) 나는 [고객]의 [무관심]을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전환해 [브랜드 팬덤]을 만드는 마케터입니다.
세상에 '마케터'는 많습니다. 하지만 "무관심을 스토리텔링으로 깨부수는 마케터"는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직무명이 아니라 '차별화된 해결 방식'을 정의하는 것. 이것이 어떤 회사,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나만의 무기입니다.
3단계 : 모든 선택의 ‘나침반’으로 쓰기
한 줄의 업이 완성되었다면, 이제 이 문장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헷갈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이 문장을 나침반처럼 꺼내 보세요.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이 왔을 때: “이 일이 내 업(業)의 '나만의 방법'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줄까?”
교육이나 공부를 고를 때: “이 선택이 내가 정의한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까?"
이직을 고민할 때: "저 회사의 환경이 내 업(業)의 '대상'과 '문제'를 확장시켜 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요”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 보여도 그 선택은 결국 나를 소모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마인드셋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한 줄의 업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타이틀을 얻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사람인가?
이 문장이 정리되면 회사는 더 이상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내 업을 실현하기 위해 잠시 들르는 '정거장'이자, 나를 돕는 '도구'가 됩니다. 당신이 회사를 키우고 있다는 부채감은 이제 내려놓으세요. 회사를 통해 당신의 업(業)을 키우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관점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쌓이면 정체성이 됩니다. 이제 당신의 커리어는 '소속'이 아니라 '업'으로 설명되는 새로운 챕터에 들어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