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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가드너 Apr 18. 2024

될 수만 있다면 되어야 한다

'다시 또다시 취준생이 되다' 시리즈

칭찬은 고래를 병들게 한다    

 

어릴 때 달리기로 져 본 적이 없었어요. 주위에서 '잘한다'는 칭찬에 얼떨결에 운동선수가 됐어요. 약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그땐 겁도 없었고 소질은 더더욱 없었죠.     


박찬호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좋고 운동신경이 뛰어났으며, 다른 사람에 비해 유난히 큰 손을 눈여겨본 야구부 선생님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여자답지 못하고 못생겼던, 그러나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던 박세리도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허들 및 투포환 선수에서 골프로 전환했다. '치킨과 유니폼'을 준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양궁을 시작한 안산도 있다. 나도 이들처럼 호기롭게 시작했었다.     


체육관 곳곳에 '전국체전 우승'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이상한 기합 소리를 내며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운동을 하던 언니·오빠들의 모습이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날부터 시작된 서바이벌 기초체력 테스트로 매일 1~2명의 탈락자를 만들었고 찌는듯한 더위와 육체적 고통, 심리적 압박감으로 2개월간의 여름방학을 보내고 난 후, 결국 최종 1인이 되었다.      


'소질(素質)'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사전적 의미가 있다. 하나는 '타고난 능력이나 기질'이며, 다른 하나는 '어떤 병에 특히 잘 걸리기 쉬운 병적인 체질'이다. 그 시절 나는 병약한 체질로 열등감 크고 운동에 재능이 없는 그저 '달리기만 잘하는 아이'였다. 운동을 좋아하거나 소질 있는 아이들 위주의 선발이 아닌 끝까지 살아남는 생존자를 선발하고자 했던 코치님의 독특한 선발 방식에 드디어 운동부원으로 합류되었다. 



"운동만 잘하자"     


학생은 학교 규칙을 적용받죠. 용모와 복장에서부터 학적과 관련된 상벌제도를 적용받으며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교복을 입지 않아요. 운동선수들은 학교나 교사의 묵인하에 예외 또는 특혜로 교칙을 적용받죠. 운동선수에게는 교복을 대신하는 유니폼으로 운동복을 입습니다. 운동복은 교복의 대체물이자 일반학생과 구별 짓는 상징물인 셈이죠.      


학교운동부원으로 '합숙소'에서 수업시간표가 아닌 훈련시간표(훈련계획서)에 따른 운동만 하는 기계가 되었다. 시합을 몇 달 앞두고 시작되는 합숙훈련과 수업 불참으로 교실이 아닌 운동장과 체육관에서의 운동부원으로의 모습이 형성되어 갔다. 시즌별 진행되는 대회에 타이머를 맞추고 하루 24시간 잘 짜인 엄청난 양의 훈련을 반복하는 생활을 하였다.    

 

강도 높은 훈련 과정, 시즌별 대회 성적으로 주어지는 상·벌 체계의 부당함, 그에 따른 스트레스 등 정신적으로 점점 지쳐갔다. 크고 작은 부상, 심리적 슬럼프는 경기력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경기의 결과에 따라 즉각적인 보상을 받기도, 죄인이 되기도 했었다. '시합에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으로 패배를 합리화할 수도 없었다. 그때 나에게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은 사치였다.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중학교 진학 후 '운동선수는 머리에 든 것 없다'는 사회적 통념이 강했던 시절. 본인도 선수 시절 줄곧 반 석차 상위권을 유지했다는 감독님의 지도 방침에 따라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어요. 심하게는 상위 10% 석차에 들어야만 다음 시즌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어요. 그래서 훈련시간에 짬짬이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했었구요. 
한 번은 대회 시즌과 중간고사 기간이 맞물렸었는데 대회를 끝내고 운동부원들끼리 따로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던 경험도 있어요. 빈번한 수업 불참에도 운동부원들의 좋은 성적을 의심했던 한 선생님의 건의로 운동부원들만 재시험을 치렀던 웃지 못할 경험도 있었구요.     

 

전국 소년체전 우승이라는 성적을 끝으로 중학교 선수선발을 위한 인근 중학교 코치 선생님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다. 초등학교 때 받았던 혜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솔깃한 제안이었다. 롤모델(국내 최초 여성 국가대표선수 출신 교육자) 감독이자 운동부 선배의 오랜 설득 끝에 결국 체육 중학교가 아닌, 오전에는 일반적인 학교 수업을 하고 오후에 운동하는 일반계 중학교에 진학했다.      


일반학생과 단절된 학생선수로 '반쪽 학생', 교복 없는 학생이 되었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훈련 시간과 대회 출전으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참여한다고 해도 주체적으로 참여한 경험이 없다고 한다. 설령 학교 행사에 참여할 경우 어정쩡한 주변인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무엇이든언젠가는    

 

아들러(Alfred Adler)는 열등감을 자기와 이상적 자기에 대한 확신 간의 불일치가 있을 때 생긴다고 보았다. 또한 병약한 체질로 인한 열등감을 '신이 준 축복'이라 의미를 부여하였다. 열등함을 극복하고 우월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긍정적인 자기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행동을 추진하는 심리적 요인이자 어떤 목적을 향해 특정 행동을 하게 되는 이유를 동기(motive)라 한다. 그와는 별개로 동인(drive)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강한 본능적 욕구 및 각성한 목표 지향적 경향성으로 결핍이나 고통을 일으키는 유해한 상태에서 발생된다.      


그 시절 운동의 동인은 ‘지금과는 다른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했던 나의 간절한 결핍이었다. 또한 열등감을 너머 우월해지고 싶었던 욕망이었다. 고통 없는 성장은 없고, 두려움이나 상실 없는 고통은 없다. 그 고통의 순간들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더 나은 삶’을 이루게 할 초석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 대한 존중이 없던 시절, 많은 양의 운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인체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초월한 ‘연습벌레’가 되었다. 그런 운동량을 버텨내지 못해 몸이 기억하는 고통은 상흔이 되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면증, 위장병, 두통으로 가끔씩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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