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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가드너 May 16. 2024

맨땅브레이커 - "글쎄요"의 힘

'다시 또다시 취준생이 되다' 시리즈

꿈은 모르겠고 취업은 해야겠고     


인간의 생애는 매우 복잡하며 개인은 삶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건을 경험한다. 운동 중단 학생선수들의 진로경로 분석 결과 개인이 경험한 생애 사건들이 진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과정이다. 이것은 우연히 발견되기도 하고 노력으로 찾아지기도 한다.


비록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 공부한 성과(수석 입학)로 만족한 채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다. 10여 년간 운동선수로서의 경력을 마치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시간적 여유로움을 타고 때늦은 사춘기가 찾아왔다. 수년간 신체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보냈던 일상에서 하루하루의 편안함이 가져다주는 그것이 주는 두려움이 있었다.      


목표란 개인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일생으로 봤을 때 원하는 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고 한다. 하지만 목표가 일찍이 정해진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장점일 수 있으나 만에 하나 목표가 바뀌거나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진로를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일반 학생들과는 달리 하루 일상이 시합과 훈련으로 맞추어져 있던 '운동기계'의 경험 및 교육적 지식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진로에 대한 고민만으로 만만치 않은 대학교육 과정을 따라가기엔 나의 학구열이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언니 : 앞으로 뭐 하고 싶어?  

나 : 글쎄...         

언니 : 하고 싶은 일 없냐고!        
   
나 : 글쎄...                                       


자유에는 부정적인 자유와 긍정적인 자유가 있다고 한다. 부정적인 자유는 '벗어나는 자유'(freedom from)로 제약이나 다른 사람의 지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긍정적인 자유는 '할 수 있는 자유'(freedom to)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관리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자유라고 한다. 운동선수로서의 삶에는 마침표를 찍었으나 대학 생활의 부적응, 무늬만 대학생인 사치스럽고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1학년을 마치고 휴학이라는 자유를 선택하였다.            

             

운동 이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휴학 후 새벽마다 직장인을 위한 개인레슨을 했었고, 레슨 받던 회원의 소개로 1년간 일본계 회사에서 사무보조로 일을 하게 되었다. '운동선수 출신', '고졸' 경력이 전부인 사회 초년생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쓸 여유 없이 때늦은 적성 찾기를 위해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계획에도 없던 첫 번째 직업이었다.  

 

   

매일 아침 왕복 3시간가량의 출퇴근 지옥철에서 모든 사람이 무엇인가에 이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전적인 의미로 이끌다(drive)는 '길을 인도하다, 방향을 제시하다'라고 한다. 목적도 없이 쫓기면서 끌려가다 보면 길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과 그들처럼 흉내라도 내보자는 심정이었다. 매뉴얼도 없는 사무기기(컴퓨터, 프린터기, 팩스기)라는 괴물들을 상대로, 두려움에 맞서고 정신적으로 더 강인함을 요구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10여 년간 훈련해 왔던 운동 기술들이 아무 쓸모가 없다는 허무함과 무언가에 또다시 훈련되어야 할 것들 사이에서 깨닫게 된 생존을 위한 목표를 찾아가게 되었다. 인간은 시험에 의해 개발되고 다듬어진다는 말이 있다. 즉, 삶의 모든 영역이 시험이고 매일매일 스스로 평가받는 것 같았다.     


주위 사람들의 반대와 우려 속에서 보냈던 1년간의 휴학 기간은 학교로 복학 후 대학생으로서의 성장의 변화에 역동적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는 기업들의 대량해고, 실직으로 이어져 고용시장 충격은 결국 '질(quality) 좋은 일자리' 취업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일본 국비유학생으로의 꿈의 좌절과 대학원 진학을 강제 포기해야만 했던 그 시절, '변화 없는 성장은 없고, 두려움이나 상실 없는 변화는 없다'라는 이 한 문장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     



면접관 : 운동선수 출신이시네요? 그런데 왜 이 직업을 선택하셨죠? 

나 : 글쎄요.      


아직 직업 진로의 인정요인에 운동 경험이 영향을 미친다는 선행연구는 찾아보기 드물다. 그만큼 운동선수와 성공에 대한 이미지는 불일치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회사 조직에서도 운동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인식이 조직 생활에 활력소로 작용하는지가 의문이다. 운동선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에서 졸업 후 입사합격 통보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런데도 완전하게 살지는 못하는 존재'라는 뜻의 <미생> 드라마는 무역상사를 배경으로 현대 직장인들의 삶을 과장됨 없이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지만 결국 퇴사로 끝났던 결말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 씁쓸하기까지 했다.     






지금까지도 운동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호감도 및 친근감이 높게 평가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진로를 탐색하고 선택하고 노력해 나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성격의 특성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높게 평가받았던 것 같다.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건강관리, 체력관리 등 자기 관리를 잘하므로 조직 내 인정을 받았던 첫 사례의 기억. 운동 중단 후 직장 내에서 특별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인내를 감수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승화되어 나타났다고 착각했었다.  

    

일, 직업이 개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개성을 표현하여 개인의 삶으로 드러난다는 중요한 사실과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 속에 내포된 많은 의미를 직업을 갖고 일을 해나가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며, 직업을 통한 만족감을 위해 잠자고 있는 잠재력, 선호도, 포부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도록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잘 다듬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미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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