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무리 작아도 스스로 해냈다는 느낌을 좋아했다. 성적이 오르는 성취감이 가장 최상위였다. 그 성취감을 만들어내는 일은 선생님의 일이었다. 주변에 직업이 다양하지 않았고(환경적 이유) 나 자신도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직업을 더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개인적 이유)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하고 사범대에 갔다.
졸업을 앞두고 의심이 들었다. ‘진짜 선생님이 내게 딱 맞는 일일까? 나중에 직업을 바꿀 수 있다지만, 내 첫 커리어로 선생님이 괜찮을까? 왠지 모르게 더 좋은 게 있을 거 같은데?’ 결국 1년간 학업을 잠시 뒤로 하고 인턴으로 살았다. 학교 밖에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궁금했다. 이왕이면 선생님처럼 사람들을 가르치고 만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앞만 보도록 시야를 좁히는 경주마처럼 선생님을 향해서만 달려왔기에 어떤 일을 해야 사람들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잘 몰랐다. 익숙한 대기업 공고를 몇 개 찾아보고 알았다, ‘인사 쪽 일을 하고 싶다.’
대외활동-인턴-취업 루트가 정석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교육봉사, 국제협력, 마케팅 등 ‘이걸 왜 했지?’ 싶을 정도로 온갖 대외활동을 했다. 인사 직무를 하면 연구개발직부터 생산직, 재경직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장 인사 쪽과 관련되어 있지 않아도 최대한 여러 일을 해보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인턴도 여러 회사에서 했다. 비영리조직, 투자사, 컨퍼런스 기획 및 운영 회사에 있었다. 거기서 콘텐츠 제작, 교육 프로그램 운영, 시장 분석, 행사 기획 및 운영 일을 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가 내 삶에도 언젠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하면서.
현실은 꽤 웃펐다. 사범대를 졸업하면 중고등학생의 진로 진학 업무도 한다. 하지만 당장 사범대를 다니는 내게도 커리어을 상담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활동과 일을 해도 당최 내가 잘하는 건 뭐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 알 수 없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국가가, 가정이, 학교가 나의 성장을 함께 살핀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내 성장은 오롯이 내 몫이다. 이 커리어를 선택하는 게 맞는지, 이 업무가 나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와 같은 무거운 질문들에 내가 직접 답해야 한다. 그리고 내 결정을 책임져야 한다.
요즘 결정 내리기는 더 어렵다. AI가 발달하면서 내 자리는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던데 그럼 나는 앞으로 기나긴 삶에서 뭐 하고 살아야 하나? 취업도 어렵지만 이직도 참 쉽지 않은데 어쩌지? 성인이 돼도 앞날 고민은 계속된다.
대외활동-인턴-취업 여정의 끝은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인사 담당자가 되자’는 결론이었다. 감사하게도 인사 교육 담당자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은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내 비전(누구나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세상 만드는 사람)과 이 업무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인사 교육 담당자로 일하면서 성인 학교 담임 선생님을 자주 떠올렸다. 사람들은 왜 성장하고 싶어 하고, 그 성장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안하는 게 업무였기 때문이다.
내 별명인 보더콜리의 특성처럼, 나는 한 가지만 해서는 만족이 안 되는 사람이다.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성취감을 안겨준다. 그런 점에서 인사 업무는 여러 직무 사람들의 고민을 나누면서 회사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두루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고, 내게 다채로운 성공 경험을 주기도 한다. 그 성취감 맛보려면 나부터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점이 좋았다.
그렇게 이 일을 꿈꿨고, 선택했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