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교육 매니저의 미래

by 커리어걸즈

“지원자 님은 10년 뒤에 뭐가 되고 싶으신가요?”

“제가 되고 싶은 지점을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지금 하고 싶은 경험과 할 수 있는 경험을 다 한 뒤에 내가 전문가라고 불리고 싶은 분야를 정해서 정진하려고 합니다.”


이 질문은 자기소개서 기본 문항에도, 실무진과 임원 면접 때도 자주 나온다. 인턴이나 첫 정규직 취업을 준비할 때는 나만의 목표점으로 멋지게 대답하고 싶었다. 역사를 가르치는 큰 별, 최태성 선생님은 “꿈은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이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때의 나는 그 말에 큰 영감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 목표점은 동사형이었다. 예를 들어, “제 꿈은 최고인사담당자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명사형 꿈이다. 명사형 꿈은 내가 하는 일만 드러낼 수 있다. 그 일의 내용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취업공고에 적힌 “이런 일을 해요.” 혹은 “이런 분을 원해요.” 란에 있는 설명과 같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누구나 그 자리에 갈 수 있다. 그만큼 그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기 쉽다.


나의 동사형 답은 더 길었다. “저는 누구나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직무(인사와 인구학), 코칭, 데이터 스킬을 바탕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더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도록, 나와 타인의 성장을 큐레이션하고 싶습니다.”


이 꿈에 맞게 여러 동사형의 일을 시도했다. 그러면서 내 꿈은 선생님에서 인사 담당자로 조금씩 바뀌었다. 지금은 대기업을 거쳐 스타트업에서 인사 교육과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비영리 조직이나 소셜섹터에서 일했다. 돈을 더 많이 벌자는 목표보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자는 의지로 뭉친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우리 동료가 믿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는 확신이 나와 내 주변 동료들에게서 계속 강화되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 확신은 조직의 미션과 비전 문장으로 쓰였고, 오피스 곳곳에 붙어있었다. 볼 때마다 내가 일하는 이유를 상기하게 됐달까. 그 시간을 겪으며 내 꿈은 바뀌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꿈꿔온 선생님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학교 아닌 일하는 곳에서, 학생 아닌 일하는 사람들의 성장을 지원해주고 싶어졌다.


비영리 조직에서 일할 때 느낀 보람은 상당했다. 한편, 마음 속에 왠지 모를 불안이 있었다. 이 돈으로 앞으로 잘 먹고 살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말해도 모르는데, 이 일로 내가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지금같은 애정으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전부 미래에 대한 불신이었다.


내 꿈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가냘프게 흔들릴 때, 선배들을 찾아갔다. 여성이고, 리더로서, 여전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이 내용은 부록에서 더 자세히 읽을 수 있다.) 그때 만난 선배들이 한 말 중 가슴에 박힌 말이 있다. 처음부터 이 커리어를 정하고 온 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과거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지, 과거의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고. 직원으로서, 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나로서 살다보니 지금의 내가 됐다고. 그 인터뷰는 내 일의 미래를 보는 시각을 바꾸었다.


미래에 대한 내 불신을 들여다봤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내게 지금 당장 10년 뒤 커리어를 점으로 찍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불안으로 번졌다. 살면서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10년 넘게 꿈꾼 교사의 꿈을 접히는 순간을 경험한 내게 10년 뒤 나를 그리기에 자신이 없었다. 교육 말고도 인구학, 코칭, 사업개발, 에디팅, 데이터 분석 등 잘하고 싶은 일은 너무나도 많다. 그중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지 지금 정해야 한다고? 아무리 찾아도 나와 정확히 똑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역심 같은 게 생겼다. 꼭 10년 뒤 꿈을 지금 정해야 하나?


비영리 조직을 나와 대기업으로 갔다. 돈에는 관심 없고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고 싶다더니, 웬 기업인가? 주변 사람들이 많이 물어봤다. 그때 내 답은 “작은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았으니, 큰 조직의 시스템도 경험해보고 싶어요.” 였다. 확실히 일하는 스타일이 달랐다. 비영리 조직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도 직접 했다. 행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행사에 쓰일 배너 내용을 기획하고 내부 컨펌을 받은 뒤 디자인하고 인쇄소에 맡겨서 받아왔다. 기업에서 일할 때 내 일은 배너 내용 기획 후 내부 컨펌에서 끝났다. 디자인을 해서 나온 배너를 인쇄소에서 직접 가져다주셨다. 인사 교육 직무로 입사했으니 교육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른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시스템이었다. 이 일처럼 내 일은 한정된 영역에 집중되면서 더 뾰족하게 바뀌었다.


답답하기도 했다.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다. 아무리 작은 일이어도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다. 혹은 내 일과 상관 없어도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기업에서 일하면 내 전문 분야를 닦아가기에 좋았다. 하지만 나는 내 전문 분야 말고도 다양한 일을 해보는 기회를 잡고 싶었다. 실제로 주변에 일을 잘해서 존경할 만한 동료와 선배들은 과거에 경험한 여러 커리어를 지금까지 잘 엮어온 사람들이었다. 경제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해서 인사 일을 하는 분이 있었고, 항공사에서 일하다가 인사 일을 하는 분도 있었다. 그들의 일하는 모습은 현재 내 일에서 조금은 다른 일로 나아가는 용기를 줬다.


대기업을 나와 스타트업으로 왔다. 제조업에서 IT 업계로 바뀌었다.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그 범위와 방식은 다르다. 이직 과정 중 면접 때 실무진도 경영진도 물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관두고 왜 우리 회사로 오시나요?”, “지원자 님은 10년 뒤에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 질문에 “저의 10년 뒤 커리어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답했다. 명사형으로 꿈을 찍어두지 않은 덕분에, 동사형 꿈에 맞으면 된다는 믿음으로 이리저리 내 커리어의 점들을 찍어왔다. 찍고 나서 보니 똑바른 직선이 아니라 울퉁불퉁 못난 선이라 지금은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내 구불구불한 커리어 선을 믿는다. 지금 나와 내 회사가 해보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하다보면 10년 뒤 내 모습이 차차 만들어질 것이다. 10년 동안 나의 최종 목표(누구나 건강하게 성장하는 세상)과 함께 여러 시행착오를 성실히 내 안에 쌓은 결과로, 지금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모를 ‘10년 뒤 나만의 커리어’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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