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수원, 2년차 HRD 직무 사원 하루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내 회사는 대기업 연수원이었다. 연수원은 보통 경기도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다. 다시 말하면, 대중교통이나 도보로는 회사 가기 어렵다. 두산, CJ, 현대 등 서울에 연수원이 위치한 일부 회사 아니면 연수원 재직자에게 필수적인 스펙은 운전면허증이다.
오늘은 신입사원 그룹입문과정 5일차다. 월요일에 시작한 과정이 벌써 금요일까지 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4일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첫날에는 전 계열사의 신입사원 수백명이 연수원으로 밀물처럼 몰려왔다.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런데 겉보기에 굉장히 어려 보인다. 몸에 맞지 않는 새 교복을 입은 중학생처럼, 한껏 꾸몄지만 어딘가 어색한 대학교 신입생처럼, 신입사원들과 정장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서로 처음 보는 이들이라 서먹했던 신입사원들은 어느새 서로 친해져있다.
오늘은 강의가 있는 날이다. 신입사원의 지도선배로서 하는 비즈니스 매너 강의다. 어제 늦게까지 강의안 PPT 파일을 봤다. 새삼 쑥스러웠다. 작년에 입사해서 신입사원으로서 이 강의를 선배에게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올해 신입사원 교육 담당자로 이 강의를 준비할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그때 멋졌던 선배를 떠올리며, 인상적이었던 강의 내용을 되짚어본다. 강의도 강의지만, 중간에 사수 분이 말씀 주셨던 에피소드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완벽해보이기만 했던 사수의 실수, 그 실수를 해결해낸 이야기들. 올해 신입사원들에게도 강의만큼이나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까 싶어서 지난 1년동안의 실패기를 정리한다.
어젯밤에 늦게 잤어도 연수 당일의 하루는 일찍 시작한다. 보통 9시에 과정이 시작된다. 신입사원들이 8시 30분까지 아침식사를 하고 내려오기 때문에 그 전에 사실상 모든 시작 준비가 되어야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어젯밤 이슈 체크다. 무탈한 밤이었기를 바라며 매일 아침 출근하는 마음은 정말 조마조마하다. 밤새 신입사원들이 아프거나 사고를 겪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문자, 전화, 카카오톡뿐 아니라 숙소 보안실에서 온 연락까지 고루 확인한다.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이렇게나 간절히 기도하면서.
8시에서 8시 30분쯤, 신입사원 전체에게 연락을 보낸다. 오늘의 일정과 준비물을 정리한, 아주 간단한 메시지다. 교육을 하다 보면 교육 대상자가 어떤 직무이고 몇 살이든지 간에 가장 상세하고 친절한 정보 전달은 필수다. 어제 교육 종료 때 안내한 내용이라고 해도,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지라 한 번 더 리마인더를 줘야 한다. 그렇게 연락을 보내고 나면 차차 강의장으로 신입사원이 한 두 명씩 오기 시작한다. “잘 잤어요?” 혹은 “오늘 아침 어땠어요?” 하는 안부인사로 시작한다. 이제 며칠 지나서 내가 익숙해진 신입사원들과는 간단한 담소를 나눈다. “어제 교육 너무 지루했어요!” 라든가 “어제 동기들이랑 팀 프로젝트 하느라 좀 늦게 잤어요.” 하는 볼멘소리는 물론이고, “매니저님도 잘 주무셨어요? 엄청 피곤해보이세요.” 하는 위로까지 대화 주제는 아주 다양하다.
본격적인 하루는 9시에 시작된다. 강의장에 신입사원들이 다 왔는지 확인한다. 그제서야 강의를 시작한다. 사실 나는 강의가 별로 떨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발표 스크립트를 미리 작성해두는 편도 아니다. 그저 여러 번 교안을 보고, 각 장표에서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게 긴장되지 않다. 신입사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매너, 회사생활에서 중요한 매너 등을 이야기한다. 물론, 간단한 실습도 있다. (그래야 사람은 졸지 않는다. 과학시간에 실험이 왜 있었는지를 강의자로 서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50분 정도 강의 하고, 10분 쉬는 시간 주기를 3번 반복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온다.
점심은 연수원에서 제공되는 밥을 먹는다. 간혹 정말 바쁘고 다음 오후 일정이 덜 준비된 날이면 밥을 못 먹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 없다. 연수원은 오전과 오후에 간식이 제공된다. 간단한 쿠키류도 있지만, 샌드위치, 핫도그, 조각피자 등 꽤 든든한 간식이 나온다. 그래서 밥과 간식을 다 챙겨먹다보면 포동포동 살이 오른다. 점심시간에 신입사원들 문의가 쏟아지기도 한다. 숙소키를 잃어버렸다거나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등의 이슈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다보면 1시간이었던 점심시간은 마치 10분 같이 사라져버린다.
오후에 1시간 동안 비즈니스 매너 강의를 이어서 진행한다. 이때 핵심은 식후 졸음을 이겨내기다. 대부분 강의자가 아닌 학습자이기 때문에 밥 먹고 졸린 건 학습자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습자가 가만히 앉아있기 때문에 더 졸릴 수 있다. 하지만 강의자라고 해서 졸리지 않은 건 아니다. 전날 강의를 준비한 피로에, 점심시간에 약간 풀린 긴장감과 이제 강의가 얼추 마무리되어간다는 안도감이 결합되면 슬쩍 졸음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강의를 마쳐야 한다. 특히, 나는 강의하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다. 강의를 마치고 다음 강의를 해주실 강사님과 연락도 해야 하고, 다음 강의는 잘 진행되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다른 강사님들의 강의를 강의장 뒷편에서 보고 있자면 ‘아, 내 강의에 저런 스킬 더 추가해보면 좋겠다.’ 라는 포인트를 얻기도 한다. 상황이 잘 따라주지 않으면 다른 강사님의 강의 때 일을 하기도 한다. 이후 교육 일정을 살피거나 서류 작업 등이다. 그렇게 18시가 되면 교육 일정은 끝난다.
교육 일정이 끝나는 거지, 하루가 끝나는 건 아니다. 신입사원들은 18시부터 저녁식사를 한다. 가능하면 식사 후인 19시 이후에도 신입사원들끼리 프로젝트를 하도록 유도한다. 일과시간에 프로젝트 할 시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저녁시간에 사실 할 일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신입사원들끼리 친해지기 위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모든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강의장에서 어떤 신입사원들이 얼마나 모여서 무슨 활동을 하는지 말이다. 내 몸은 하나인데, 수백 혹은 수십 명이 되는 인원을 챙긴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동시에 다음 날 일정 보고, 교육 진행 외의 업무들을 할 수 있는 건 저녁시간뿐이다. ‘야근 아닌가?’ 싶을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어쩔 수 없이 교육을 진행하는 기간에는 야근이 잦다. 긴 하루가 일상이 되는 시기도 있는 거지.
교육 담당자의 일은 여러 직업이 섞여있다. 교육 기획 및 운영자는 기본이고, 거기에 커뮤니티 매니저, 안전관리자, 고객문의 대응자, 보안담당자, 청소하는 사람, 심지어 테크 이슈 해결자 등 별의 별 일이 생기고 그 일들을 해낸다. 우리 선배들은 우리 일을 ‘종합예술인’ 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종합생활예술인’ 이다. 사람이 사람을 24시간 대하는 일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어떤가, 교육 담당자의 2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