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전도(Transvaluation of Values)에 대해서
얼마 전 독서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나보다 나이가 적은 동갑내기 지인은 술자리에서 아래와 같은 말을 내게 건넸다.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제는 잘 모르겠어.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공부해오고, 그래서 좋은 직장에 취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지니고 있던 신념 체계들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거든.
어떤 사건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그렇게 최고가 되는 것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와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지인의 메시지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주장한 가치의 전도(Transvaluation of Values)라는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처음부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미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가치 체계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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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가능하다면 최고가 되어야 한다와 같은 명제들은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사회가 만든 가치인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치인지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순간이 찾아온다. 기존에 믿어왔던 가치가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순간이다. 바로 그때 인간은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리석고 둔하기 짝이 없는 나는 내가 믿고 있던 신념 체계를 병원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선고를 받고 나서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믿었다. 열심히 공부했고,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사회가 말하는 성공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들은 한마디는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것들을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뜨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아쉽다” 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렇게 끝나도 상관없지 않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생각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믿어왔던 가치 체계가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리 없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미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미련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가. 정말 이것이 내가 원했던 삶이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믿어왔던 것들이 하나씩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 가능하다면 최고가 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과연 내가 진심으로 원했던 삶의 기준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내가 살아온 사회가 오랫동안 반복해서 주입해 온 가치였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세상이 아닌 나만의 가치를 찾기 위한, 자기이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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