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지 못한 공부는 결코 뜨거워질 수 없다
며칠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대학 시절 학업에 얼마나 매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모인 이들은 이른바 '모범생'의 전형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학점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대하는 태도와 자신만의 학습법, 그리고 그 성실함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에 대해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에게 대학 시절 공부는 '사치'에 가까웠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그리고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3학년 2학기 무렵 운 좋게 외부 장학금을 받으며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학구열이 불타오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공부가 실용적이지 않다고 믿었다. 높은 학점이 취업을 보장하거나 실무 능력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 자체가 없었다. 4년 간의 최종 학점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점수는 3.5점 정도였다. 요즘 같은 학점 인플레이션 시대를 감안하면 아마 3.0점, 등급으로 치면 B0 정도의 평범하다 못해 허접해 보일 수 있는 점수다.
누군가는 이 점수를 0.1점이라도 올리기 위해 도서관에서 청춘의 밤을 지새우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 점수가 더 높지 않음을 비관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낮지 않음에 안도하며 기뻐하는 쪽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공부를 '아르바이트' 하듯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공부에서 즐거움을 찾거나 괴로움을 찾기 보다는, 내가 지켜내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양심적으로 했던 것 같다.
문득 나의 이런 무덤덤한 태도가 어디서 왔을지 궁금해졌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끝에는 부모님이 계셨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평균 80점을 받아와도 왜 90점을 넘지 못했느냐고 타박하지 않으셨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라는, 어찌 보면 공허할 수도 있는 그 위로가 나에게는 커다란 방패가 되었다. 덕분에 나는 100점을 받지 못해 열등감에 시달리는 학생이 아니라, 50점을 받아도 내 삶에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먼저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돌이켜보니, 학업에 대한 나의 관조적인 태도 이면에는 더 본질적인 이유가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미의 부재'였다. 내가 왜 대학에 왔는지, 이 공부가 내 삶의 방향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시간을 견뎌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목적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노를 젓는 행위는 고통스러운 노동일 뿐이다. 나에게 공부는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야 할 막연한 과정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과거에 그토록 공부에 무심했던 내가 지금은 '공부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파고드는 영역은 뇌과학, 심리학, 유전학, 생물학, 철학, 문학을 넘나든다. 이 방대한 분야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나는 다양한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타인이 어떻게 자신의 적성에 맞는 커리어를 밟아나갈 수 있을지를 연구한다.
과거의 나에게 공부가 무거운 짐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 공부는 나를 찾고 타인을 돕는 유일한 열쇠가 되었다.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똑같은 '공부'라는 행위는 노동에서 예술로, 그리고 생존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늘 이 글을 통해 당신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였는지를 고민해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학창 시절에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그 공부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고, 현재의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되돌아보길 바란다. 그 무의미했던 혹은 치열했던 시간 속에, 당신의 다음 커리어를 결정지을 중요한 단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무의미한 공부를 멈추고 나만의 본질을 찾아 의미있는 공부를 찾아가는 법, 《자기이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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