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사'라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사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내가 '자기이해'라는 키워드를 삶의 프레임으로 삼고 있듯, 이사는 그동안 무의식 아래 묻어두었던 나 자신에 대한 단서들과 강제로 마주하게 되는 일종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다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가장 강력한 문법은 '소비 자본주의(Consumer Capitalism)'다. 우리는 과거의 선조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양의 사물을 소유하며 산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소유한 물건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확장된 자아(Extended Self)'의 역할을 한다. 즉, 내가 무엇을 곁에 두고 살았는지는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무엇에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가장 투명한 성적표가 된다.
이사 짐 속에서 가장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은 단연 책들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정체성을 지닌 내게, 서가의 무게는 곧 내 내면의 무게와도 같았다. 나는 외적인 화려함보다는 내적인 성찰을, 타인의 시선보다는 독서를 통한 자기 증명을 중요시하며 살아온 사람임을 이 묵직한 종이 뭉치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반면 어머니가 5도 2촌(5일은 도시, 2일은 시골 생활)을 위해 시골집으로 보낸 짐들은 대부분 살림살이였다. 그것들은 가족의 물리적 삶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지탱하기 위해 어머니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헌신의 흔적이었다. 어머니의 짐 속에는 가족들을 위한 '돌봄의 철학'이 깃들어 있었고, 그것은 내 책들이 말해주는 개별적 성찰과는 또 다른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 놓인 짐들이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이해하려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지탱하려는 삶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과거의 나라는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옷 욕심이 없다고 믿어왔지만, 짐을 정리하며 마주한 것은 20대 시절 사들였던 수많은 정장과 와이셔츠였다. 당시의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외적인 '페르소나(Persona)'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던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그 옷들은, 한때 타인의 인정에 목말랐던 나의 자화상이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중요한 통찰이 생긴다. 우리는 스스로를 '현재의 나'로 정의하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가진 것은 '과거의 나라는 인간이 남긴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측면에서 물건은 기억보다 훨씬 정직하다. 기억은 끊임없이 재구성되지만, 물건은 과거의 선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물건들은 낯설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나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에 발이 묶여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이사를 계기로, 내 짐의 상당수를 떠나보내기로 했다. 단순히 공간을 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와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이사라는 행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사는 단순히 공간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과거를 재배치하고, 현재를 다시 정의하며, 미래를 위한 여백을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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