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한민국 성인들은 뒤늦게 사춘기를 앓는가
진로를 고민하던 한 후배에게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슬며시 추천해 주었다. 운영자가 나라는 사실은 비밀로 한 채, 그저 '도움이 될 만한 곳'이라며 건넸다. 얼마 뒤, 후배는 꽤 긴 문장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선배님이 추천해주신 글들을 읽으며 제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됐어요. 제가 '수동적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는 걸 자각했거든요. 블로그에서는 프레임이라는 용어를 썼지만, 저는 '사춘기'라는 말이 더 와닿아요. 사실 저는 몇년 전부터 부모님과의 갈등이 갈수록 심해졌는데, 엄마가 저한테 "너는 사춘기도 아니고 왜 그렇게 행동하니?"라고 말하셨거든요.
엄마가 말한 것처럼, 저는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사춘기를 겪는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선배님이 추천해주신 블로그 덕분에 제가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제가 이제라도 정체성 없이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후배의 답장을 읽으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내가 이 공간을 통해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단 한 번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것, 즉 자신이 타인이 짜놓은 프레임 속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변화의 시작이다.
사춘기(思春期)란 본래 아동이 성인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급격한 신체적, 심리적 변화의 시기를 뜻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시기는 '자아 정체성'과 '역할 혼란'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전장이다. 호르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독립적인 자아를 확립해 나간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특수성 속에서 많은 이들이 이 필수적인 통과 의례를 유예당한다. 입시와 취업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과업에 밀려, 정작 '나'라는 주체를 세우는 일은 뒷전이 된다. 그렇게 몸만 성인이 된 이들은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서야 문득 깨닫는다.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후배가 말한 '서른의 사춘기'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가 주입한 '수동적 프레임'을 깨고 비로소 '주체'로 탄생하려는 실존적인 몸부림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사춘기를 겪지 못한 성인은 '타율적 존재'에 머문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잣대, 타인의 시선이라는 외부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칸트가 말한 '자율', 즉 스스로 입법한 도덕률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후배가 자신의 상태를 '사춘기'라 정의한 것이 탁월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방황이 아니라 '성장'을 전제로 한 진통임을 직관했기 때문이다. 혼란은 무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기 전의 필수적인 과도기다. 만약 지금 당신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끼거나,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온 커리어가 내 옷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당신 역시 '지연된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이해'를 통해서 나를 정립한다는 것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기질을 분석하고, 내가 반응하는 핵심 가치를 찾아내며, 내 무의식이 그리는 궤적을 데이터로 확인하는 지극히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작업이다. 이 여정은 길고 험난할 수 있지만, 그 끝에는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나의 목소리로 움직이는 진정한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을 빌어서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나는 응원을 보낸다. 당신은 이제야 비로소 당신 자신의 삶을 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테니.
▶ 지연된 사춘기를 끝내고 오직 나만의 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당신을 위한, 《자기이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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