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무의식 글쓰기를 진행하는 분의 글을 읽었다. 이분께서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셨다.
전체적으로 스스로 재미없고, 심심한 성격이라고 느낀다. 사회에서는 말 잘 듣고, 반듯한 사람보다 외향적이고, 통통 튀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분의 고백은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겪는 '성격적 열등감'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이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성격은 언제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떤 면을 빛 아래 두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회는 분명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한다. 사교적이고 활기찬 에너지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네트워크를 빠르게 확장한다. 내가 이를 '외향성 선호(Extraversion Preference)' 모델로 정리한 이유도 실존하는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외향인은 외부 세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이는 빠른 적응력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한 높은 의존성과 빈번한 갈등 유발이라는 리스크를 동반한다. 에너지가 밖으로 분산되기에 자칫 깊이 있는 사고나 전문성을 쌓기 전에 휘발될 가능성도 크다.
반면, 스스로 '심심하다'고 평한 내향인의 성격은 '진중함'과 '안정감'이라는 강력한 자산을 품고 있다. 그들은 떠들석하게 분위기를 주도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내부의 결속을 다진다. 칼 융(Carl Jung)이 말했듯 내향인은 주관적 결정과 내부 세계에 집중하기에, 일단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깊은 신뢰를 형성하며 전문성의 깊이를 더해간다.
'통통 튀는 사람'이 선호되는 시대라지만, 조직의 입장에서 개성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때로 '소음'이 된다. 색깔이 뚜렷한 사람은 주목받기 쉽지만, 그만큼 밑천이 빨리 드러나거나 기존 조직의 색깔과 충돌할 위험이 크다.
오히려 '무색무취'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가장 뛰어난 '용해력'을 발휘한다. 그들은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고, 누구와도 융화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췄다.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타인에게 위협을 주지 않는 안정적인 지지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라는 거대한 캔버스에서 배경색이 되어주는 이들이 없다면, 화려한 피사체는 결코 돋보일 수 없다.
결국 성격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성격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의 관점'이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나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정의하면 나는 타인에게 지루한 존재가 되지만, 나를 '신중하고 안정적인 사람'으로 정의하면 나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된다.
성격의 양면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긍정적으로 기만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기질의 '빛'과 '그늘'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그중 어떤 면을 세상에 내보일지 스스로 선택하는 주도권을 갖는 일이다.
당신의 심심함은 누군가에게는 평온함이며, 당신의 색깔 없음은 누군가에게는 포용력이다. 모든 것은 당신이 당신의 성격을 어떻게 프레이밍(Framing)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당신이 선택한 관점은 당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 당신의 내면의 양면성을 읽는 기술, 《자기이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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