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록테테스_소포클레스 비극

무엇이 정의인가? 본성을 따르는 삶

by 마음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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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의 화살만이 10년간 이어져 온 트로이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 아폴론의 신탁에 따라 오디세우스는 필록테테스를 전장으로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다. 헤라클레스가 고통에서 벗어나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준 대가로 자신의 무구인 활과 화살을 필록테테스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록테테스가 순순히 따라나설 리 없다. 원래 그리스군으로 트로이 원정길에 올랐던 그를 내버린 게 바로 오디세우스였기 때문이다. 극은 필록테테스를 설득하기 위해 오디세우스와 네오프톨레모스가 렘노스 섬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디세우스는 간계를 쓸 생각이다. 네오프톨레모스를 이용해 필록테테스의 마음을 연 뒤 고향에 데려다주겠다고 속여 트로이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처음엔 오이디푸스의 음모에 동참한다. 그리고 필록테테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곧 그것이 불의라는 결론에 이른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음모가 아닌 설득을 통해 그를 데려가기 위해 애쓴다. 필록테테스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국가에 충성하는 것과 개인의 양심에 따르는 것, 어느 것이 정의인가.

소포클레스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네오프톨레모스를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 묻는다_출처 위키백과



절망을 대하는 자세_플록테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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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제르맹 드루에(Jean-Germain Drouais)가 그린 필록테테스_위키백과


이 작품에서 3명의 인물인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오뒷세우스 중

필록테테스에 대한키워드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남는 법"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운명은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 차 있고,

행운과 불행은 돌고 돈다는 점을 생각하시고

고통의 바깥에 있는 자는 위험을 보아야 하며

잘나가는 자일수록 인생을 세심하게 살펴야 하오.

방심하는 사이에 느닷없이 파멸이 닥치치 않도록

502행~506행


나는 마지못해 불행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오

537행~538행


하지만 젊은이여 용기를 잃지 마시오, 이 고통은

올 때는 격렬하지만, 갈 때는 재빨리 가버리니까

806행~808행


마음에 한번 악의를

픔게 된 사람은 그때부터 매사에 악당이 되니까요

1360행~1361행


10년의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버림받고 섬에 갖혀 지내야만했던

필록테테스가 자신의 고통과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에 나라면 나에게 닥친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절망 속에서 살아남는 법에 대한 2가지 시각

하나. 에텍테토스 철학


"우리는 우리의 선택(prohairesis)이다." 디하이레시스(Dihairesis)는 우리의 선택을 실천하는 판단이며, 우리가 우리의 한정된 힘 안에 있는 것과

한정된 힘안에 없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

에픽테토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선과 악은 오직 우리의 선택에 존재할 뿐,

결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쳤다.

위키백과_에펙테도스 철학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일까?


둘, 죽음의 수용소에세_빅터프랭클


"로고테라피"

인간의 존재 가치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있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삶의 의미는 거창하고 큰 것이 아니라 생활 속 아주 작은 소소한 것에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용기_네옵톨레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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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


나는 비열한 방법으로 이기느니

차라리 옳은 일을 하다가 실패하고 싶소

94~95행


사람이 제 본성을 버리고 본성에 맞지 않는 짓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견디기 어렵지요

902~903행


그건 안되오, 의무와 공익이

윗사람들의 말을 듣도록 나를 강요하기 때문이오

925~926행


내가 앞서 저지른 잘못을 취소하러 가는 길이오

1224행


나는 수치스런 속임수와 계략으로 그 사람을 붙잡았소

1228행


이 활을 나는 비열하고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얻었소

1234행


하지만 옳다면, 그것은 지혜로운 것보다 더 나은 것이오

1246행


정의가 내 편이라면 그대의 위협 같은 것은 두렵지 않소

1251행


네옵콜레모스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내가 가진 인간의 본성을 따르면서 살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필록테테스를 보면서 마음으로 고통을 슬퍼하며

동정하고 그를 친구라 여기고 우정을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공익, 의무, 대의를 따르는 오딋세우스에게 반기를 들고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필록테테스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대화를 보면서 상하관계에 있는 상사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정당하지 않는 방법을 강요할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왔는가?


네옵콜레모스와 완고해져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충고를 악의에 찬 적으로 여기기 미워하는 필록테테스의 대화에서

자신의 세계에 갖혀 있는 기성세대의 모습이 필록테테스에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진심으로 선의로 나에게 다가온다면 그 선의를 받아들일 수

마음을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

오딋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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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드조르주의 '구혼자들을 죽이는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1812)



오딋세우스는 어떤 인물일까?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에서 지혜로운 지도자로 비춰진 모습과는 다른 모습의 오딋세우스


젊었을 적에는 혀는 느리고 손은 빨랐다오, 하지만

지금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인생 제반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97~99행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는 까다롭게 굴어서는 안 되오

111행


나는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오.

올바르고 착한 사람이 문제가 되는 곳에서는,

그대는 나보다 더 경건한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오

1049~1052행


필록테테스에서 오딋세우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익을 위해서는 사사로운 마음을 버리고 계략, 속임수 등을 써서라도 해내고야 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공익과 사익의 충돌,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어떠해도 좋다는 것인가?

승리를 추구하기 위한 지혜와 본성에 따르는 정의가 충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따를 것인가?

정의와 본성을 따르기 보다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삶이 맞는 것인가?

본성에 따르는 네옵톨레모스의 삶을 살 것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고 할 것인가?

정말 많은 질문은 하게 되는 작품인 듯하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아이에게 무엇을 선택하라고 할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제 본성과 정의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맞다고 그러한 가치를 지켜가야 한다고 다음 세대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인지

공익을 위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의 속임수에 눈 감은 적도

많았던 것 같다.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최선을 다해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본성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켜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 하지만, 젊은이여, 용기를 읽지 마시오,

그 고통은 올 때는 격렬하지만, 갈 때는 재빨리 가버리니까"

(필록테테스 807~809행)


"불행할 때는 고집을 버리는 법을 배우도록 하시오!"

(네옵톨레모스 1387행)


"오오, 불운한 자여, 이것은 그대가

자청한 것이오, 이런 운명은 외부에서

더 위대한 자에게서 온 것이 아니오.

그대가 지혜를 보여줄 수 있었을 때,

그대는 좋은 운명 대신

나쁜 운명을 택했던 것이오."

(코러스 1094~1100행)


"신들의 이름으로 부탁하오, 호의에서 그대에게

다가오는 친구를 그대가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그대도 다가가시오! 잘 생각해보시오. 이 재앙을

피하는 것은 여전히 그대애게 달려 있소."

(코러스 1163~1167행)


결국 선택의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이며,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또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과 운명은 인간의 본성과 미래를 완전히 결정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결국 그 순간의 선택은 인간이 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스스로 해나가게 되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나의 본성, 신념, 정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1409행에서 헬라클래스가 등장하여 모든 갈등 상황을 정리한다.

이러한 기법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한다.

"잘 알아두시오, 그대의 이 고통들을 통하여 그대도

영광스런 삶을 얻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소포클래스는 에우리피데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자신의 드라마로 흡수하여 이 장치의 정점인 화려한 극적 효과와 환상적인 종결을 위해 쓰였다고 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틴어: deus ex machina)는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플롯 장치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기계 장치로 (연극 무대에) 내려온 신"(god from the machine)이라는 뜻이다. _위키백과


마지막 갈등 상황을 갑자기 헤라클래스가 나와서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또한 비극의 장치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신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결정론적인 결말이지 않나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였다.


에드문드 윌슨은 본 작품에 대한 평론집으로 "상처와 화살"로 유명하다고 한다. 작가의 창조력의 근원을 정신적으로 받은 상처로 보고 이 상처는 반회적인 악취와 함께 창조력이라는 활을 동시에 가진다고 본다. 상처없는 활은 없다. 작가의 상처가 창조력을 낳고 이러한 예술창작은 치유의 과정을 거친다는 얘기일까?


인간의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해 가는가?

고통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또 한번 새기게 된다.



출처 및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D%95%84%EB%A1%9D%ED%85%8C%ED%85%8C%EC%8A%A4_%28%EC%86%8C%ED%8F%AC%ED%81%B4%EB%A0%88%EC%8A%A4%29

https://blog.naver.com/rimforest18/222505602531

http://www.yimhy.co.kr/lec/board_view2.asp?idx=789&db=lecture&page=1&m_nu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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