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리어싱크 May 07. 2020

#05 내가 퇴사가 아닌 팀을 나간 이유

우리 팀원 왜 저러죠?

화가 났다. 일단 꾹 참았다. 하지만 갈수록 맥박은 빨라지고 귓바퀴는 뜨거워졌다. 잔뜩 움츠린 미간 근육은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눈에 띠지 않게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다시 천천히 내쉬었다. '침착하자. 그리고 조금만 더 들어보자. 조금만 더.' 그때 열성을 다해 뛴 A매치 경기를 승리하고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는 선수들의 얼굴 같은 표정과 재스처를 하며 A팀장이 말했다.


"여기까지입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감정을 억누르며 예고도 없이 시작된 프로젝트 리빌딩 방향성을 듣고 있었던 나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었다.


"제가 담당하고 있던 것과 이해상충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럼 진행을 홀드 하란 얘기이신가요?"


"음... 잠깐만요."


A팀장은 갑자기 자료를 뒤적거리며 말줄임표 서른 개쯤은 되는 정도의 텀으로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입을 뗐다.


"나는 이 방향이 김사원 씨 아이템 콘셉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기 이 부분, 이 전체의 방향에 김사원 씨 생각이 일부 포함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죠. 경우에 따라 이 부분은 다른 항목과 별개로 개성을 줘도 좋을  같고요."


A팀장은 새판을 짜겠다는 발표를 대차게 꺼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무언가 석연치 않아 말 줄임표 서른 개를 찍어가며 자료를 다시 뒤적거리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팀원이 지난 5개월 동안 리드하며 진행하던 방식을 어쩌면 대부분 뒤엎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왜 내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는가. 납득이 갈만한 근거를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자. 적어도 리더라면 본인 팀원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인간이라면 팀원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 있는 대답 또는 해당 업무 포기를 보상할 다른 조건을 미리 생각해두고 브리핑을 진행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팀원의 업무와 감정 따위는 미리 생각하지 않았다.

또 모름지기 리더라면 프로젝트의 완결성에 책임을 져야 할 텐데 내가 담당한 저 일부분 개성으로 두는 것 그게 과연 될까. 까짓 거 그냥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것이겠지만, 그럼 이 일관성 없고 난잡한 콘셉트를 어떤 임원이 OK 컨할까. 사용자의 입장에서 이게 과연 말이 되는 걸까. 이 사람 진짜, 팀장 맞나.

나는  길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틀 후, 팀도 나가버렸다.


내가 회사를 나가는 게 아닌 팀을 나간 이유는 대략 아래 생각들 때문이었다.


첫째. 특별히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가?  내가 퇴사를 해서 월급을 못 받게 되고 경력에 공백이 생겨야 하는가? 리더의 방식이 나와 맞지 않으면 팀을 옮기면 그만이다. 내 실력이 나쁘지 않다면 대기업 안에서는 사람 한 명 받아줄 팀,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팀, 찾을 수 있다.


드라마 "아르곤"의 연화를 본다. 아침방송 기자로 생활하던 연화는 무료함을 느끼며 진정한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아르곤팀을 동경한다. 어쩌다 보니 졸지에 빡쎄기로 유명한 탐사 보도국 아르곤 팀으로 발령을 받는다. 물론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 곳에서 연화는 완벽한 철학을 가진 리더와 개성 강 동료와 선배들을 만나 기자 생에 다시없을 경험과 성과를 만들어간다. 어디든, 큰 회사 안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찾아보면 충분히 있다!

드라마 "아르곤"에서 아르곤 팀으로 옮긴 직후의 연화와 이후에 아르곤 팀에서 성과를 낸 연화의 모습


둘째. 대책 없이 퇴사를 해버림으로써 동료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팀은 달라도 하던 일은 충원 전까지 유지하며 인수인계할 수 있다. 인원 공백으로 인해 발생하는 남은 팀원들의 업무 부담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셋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잘못된 조직 문화에 경종을 울싶어서다. 내까짓게 뭐라고, 조직에 끼치는 나라는 인간의 영향력이라곤 회식 장소 고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선택 장애를 줄여주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A팀장을 포함한 자질 부족 리더들에게 긴장 좀 하라는 신호를 주고 싶었다.  평소 팀원들을 통제하려 들거나 팀원들과 경쟁하려 하고 전공자가 아닌 팀원을 면전에 놓고 무시하는 A팀장. 팀원의 권한은 통제하고 싶어 하면서 팀원의 업무와 동기부여 따위는 굳이 신경 쓰지 않는 이 사람의 이중적인 권위에 나는 반항해야 했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벤처 투자자인 벤 호로위츠가 2011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있는데 오래전 기고문이지만 아직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똑똑하지만 나쁜 팀원 유형 3가지.

이단아, 신뢰할 수 없는 사람, 싸가지.


그의 철학과 생각에 대부분 공감하지만 이 기고문의 일부분은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단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 그다. 는 이단아.


다음 검색


하지만 그 똑똑한 이단아는 다시 원래 팀으로 복귀했고 A팀장 대신 팀장이 되었다. A팀장은 팀 운영의 무능력뿐 아니라 사규를 어겨 결국 권고사직 조치되었다.  나는 우리 팀 성과를 최로 끌어올렸고  평가도 사상 최고 등급을 받아 전원 전례 없는 인센티브를 받다. 인적으로 입사 이래 가장 높은 인사평가 등급과 인센티브, 연봉 인상률을 받았다. 그래, 그런 나는 이단아였다.


팀원이 회사가 아닌 팀을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 팀원이 똑똑한 이단아라면 김 팀장 당신, 긴장해야 할 거다. 


다만 똑똑하지 않은 이단아 즉, 게으르거나 그냥 자기가 이 조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거나 남의 의견을 듣지 않거나 행동은 안 하면서 말로만 투덜거리거나 험담이 잦거나 신뢰할 수 없거나 싸가지까지 없는 이단아라면 반드시 팀에 해악을 끼친다. 그런 친구들은 그냥 팀을 옮길 것을 권장하는 편이 더 낫다.


벤 호로위츠 2011년 기고문 "똑똑하지만 나쁜 팀원 3가지 유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