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무시한 대가.
곧잘 버텨오던 아빠가 결국 그 생각에 이르러 버렸다. 아빠가 예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이후 줄곧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인지가 또렷해지면 당연히 생길 일이었지만 애써 덮어두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했고, 재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른 엄마의 고생이 점점 심화되니 그저 걸어보게만 만들겠다는 것에 급급해 외면해 버렸다. (비겁하게 포장하지 않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면보다 아빠의 감정을 무시했다는 게 더 알맞다.) 재활을 몇 년째 하면서 자신이 예전처럼 걸을 수 없다는 것에 엄청난 좌절감을 시시각각 느꼈을 텐데 그냥 아빠가 웃는 날이 많아 순간을 예리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같이 웃어넘겼다. 내가 놓친 시간이, 그리고 감정이 결국 돌산이 되어 우리 가족을 덮쳤다. 아빠가 신체적으로 아픈 순간은 독하게 참아낼 수 있었다. 실제로 난 많은 순간 담담한 편이었고(아빠가 코로나에 걸려 격리 병동에 홀로 떨어졌을 때 빼고는), 스트레스도 평이한 수준으로 유지했다. 내 몸이 아닌데 내 맘대로 될 리 없고, 상황은 언제든지 바뀌기 때문에 우린 그냥 우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멘탈이 터져 식사를 끊어버렸을 때는 정말 누가 등뒤에서 밀었는데 그 아래가 바로 요단강이구나 싶을 정도로 나도, 엄마도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렸다. 첫 단식은 딱 일주일이었다. 3일을 꼬박 굶고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주말에 진료하는 옆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가기 싫다는 아빠를 억지로 데리고 내과 진료를 보고 수액을 맞췄다. 수액도 그냥 맞으면 우리 아빠가 아니다. 팔을 안 주려고 하는 건 기본이고 나를 발로 차고 멱살을 잡고… 실시간으로 내 기력을 앗아가며 겨우 맞기 시작했다. 세 시간가량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제발집에 돌아가면 식사를 다시 하시길 간곡히 빌어봤지만 신들이 다 죽으셨는지 다시 3일가량을 꼬박 굶으셨다. 다시 3일을 굶으시는 동안 출가한 언니에게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말 입에 담기도 창피하고 충격적인 상황만 만들고 그대로 퇴장하셔서 나는 썩은 동아줄마저 없어져 버렸다.
마지막 줄은 해외에 거주 중인 오빠 내외. 결혼한 지 백일 정도밖에 안된 사람들에게 이 꼴을 보여야 하나 잠시 갈등했지만 체면이고 뭐고 식사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다 감수할 수 있었다. 재택 의료 서비스로 수액을 한 번 더 맞은 날, 물이라도 한입 먹여보겠다고 사극에서 사약을 거부하는 죄인에게 강제로 약을 먹이듯 종이컵 반컵도 안 되는 양의 물을 아빠의 입에 꾸역꾸역 넣고(아빠가 뱉어 낸 게 반이라 사실 세 숟가락 정도의 양일 지도 모른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틀 전 통화에서는 실패했기 때문에 오빠 내외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영상통화를 시도했고 새언니의 고집과 달램(?!)으로 겨우 무화과 두 알과 요구르트를 반 잔 정도 드시고 1차 단식은 일단락됐다. (재개된 첫 식사에서 죽은 싫다고 하셔서 카스텔라를 종류별로 사서 이틀은 드셨다. 무려 당뇨 환자에게 카스텔라를…!) 정신이 버석버석 말라가는 중에도 대체 무엇이 이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는지 곱씹고 또 곱씹었다. 혼자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아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단식 일주일 전 일부터 천천히 이야기로 나눠봤다.
우리 둘의 입에서 나온 중대한 사건은 단 하나. 엄마가 계단에서 엎어져 몸 왼쪽에 시퍼런 멍을 얻은 날. 그날이 아빠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아빠가 걷지 못하고, 빌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관계로 외출을 하려면 항상 아빠를 태운 휠체어를 내리고 올려야 했는데 그날따라 엄마와 내 합이 맞지 않아 바퀴가 한 칸 먼저 내려가 버렸고, 엄마는 타이밍을 못 맞춰 휠체어와 벽 사이로 처박히듯 넘어졌다. 쉽게 못 일어나는 엄마의 무게와 아빠, 그리고 휠체어 무게를 그대로 지탱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빌라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윗집 아저씨가 급하게 뛰어 내려와 엄마를 구해주셨다. 아저씨의 도움으로 아빠를 내리고 얼굴을 보니 찰나에 하얗게 질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금세 멀쩡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그게 아빠를 좌절감이라는 폭풍의 눈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었다. 가장이지만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것, 내 몸은 나의 과거와 다르고 회복도 안된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에 있던 우울감이 확 올라와버렸고 결국 단식까지 이르게 되어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