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가다 (Anegada)

영국령 버진 제도의 ‘배다른 자식’

by LHS





이 사진만 봐도 느낌이 다를 터. 토르톨라나 버진 고다와는 바다의 색감부터가 아예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토르톨라와 버진 고다 섬이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데 반해 아네가다 섬은 산호초의 활동으로 형성되었기 때문. 그래서 이 섬은 산 하나 없이 평평하고 가장 높은 곳도 해발 8.5m에 불과할 뿐 아니라, 섬 내부에도 곳곳에 습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스페인 탐험가들도 이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모양인지, 섬 이름을 Anegada로 붙여 두었다 (스페인어로 ‘침수된’이라는 뜻).


그런데 얼마나 다행인가. 토르톨라에 버진 고다까지 본 다음에 난데 없이 이 ‘배다른 자식’이 있어 영국령 버진 제도 구경이 심심할 새가 없으니까.





차를 빌려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바로 느낌이 온다. 이제부터는 산길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바퀴가 빠져 버리는 모래가 위험하다는 것을 (물론 지도에 표시된 주 도로들은 대부분 포장되어 있고, 비포장이라 해도 충분히 다져져 안전하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다 운전에 조금 적응되어 고개를 들면 신기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모래와 관목, 습지가 뒤섞인 이 광활한 땅에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하고, 그 한적함 가운데 혼자 있는 그런 느낌. 그런데 섬에 산 하나 없기 때문에, 자연 속에 내가 왜소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광활한 평원 위에 군림하는 기분에 가깝다.





산호초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이기 때문에, 아네가다 앞바다는 매우 얕은 편이다. 특히 서해안이 극단적으로 얕은 편인데, 바다로 2~300 미터 걸어 나가도 발목까지 밖에 물이 차오르지 않는,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은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위험할 정도로 멀리 나가지는 말자).





상주 인구가 200명 정도에 불과해 세상의 끝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한적한 섬이지만, 그래도 관광객이 있으니 근사한 식당도 몇몇 존재한다. 비록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즐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conch 등 현지 식재료로 만들어 주는 각종 요리에는 따뜻함이 가득하다. 이 외딴 섬에서까지 식도락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이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다시 차를 몰아 구경을 나선다.





분명 같은 태양인데, 버진 고다 섬의 산기슭 바에 내리는 느낌과 아네가다섬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내리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느낌과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는 느낌도 다르고, 하늘의 구름에 반사되는 색감도 다르다. 그리고 바다의 빛깔이 다르니 석양이 이를 물들일 때의 빛깔도 다르다.


그러니 카리브해 top 3 석양을 선정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인 게다. 아마도 카리브해의 모든 석양이 다른 카테고리에 속하고, 각자 속한 카테고리에서 1등이라고 보는게 나을지도. 여하튼 아네가다 섬에서도 석양에 홀려 또 한번 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되었다.





아네가다 섬 북쪽 해안의 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호텔 느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다시 한번 ‘호캉스’를 즐겨야 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시작된 짧은 호캉스. 아무도 없는 풀에서 혼자 칵테일을 곁들여 수영도 즐기고, 그러다가 바다도 산책하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유유자적이지만, 이 섬의 분위기와 합쳐지니 무언가 특별한 느낌으로 변모한다.


미리 예약해둔 저녁식사를 즐기러 식당에 갔더니 그날 저녁 유일한 손님이었다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을 때라 그랬던 모양). 그 호젓함을 곁들여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지배인이 다가온다. 식사가 만족스러운지 확인차 온 것인데, 결국에는 늦게까지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게 되었다. 실은 이런 한가함이 카리브해에서 즐길 수 있는 진정한 호사 아닐까.





토르톨라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시간. 출발 20분 전까지만 도착하면 된다는 지배인의 말에 살짝 의아함을 느끼며 (체크인에 보안 검색만 해도 20분은 걸릴 텐데), 공항에 출발 30분 전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사람만 없는 것이 아니라 문도 다 열려 있고, 심지어는 터미널에서 (그래봐야 창고 같은 건물 하나가 전부이지만) 활주로로 나가는 문조차 그냥 열려 있다. 지배인의 말뜻을 그제야 깨달으며 공항 터미널과 주변을 거니는데 출발 시간 5분 전쯤 드디어 직원이 한 명 나타난다.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오늘 너가 유일한 승객이야’ 말해주고는 공항세를 받고 공항세 영수증을 끊어준다. 그러더니 ‘비행기 거의 도착했다니까 한 5분만 기다려’ 이러고는 다시 사라진다.


이내 비행기가 도착했다. 조종사가 내려 ‘오늘 승객이 한 명인데, 너 맞지?’ 확인하고는 능숙하게 짐을 받아 싣는다. 그리고는 무슨 택시도 아닌데 5분도 안 되어 다시 바로 이륙. 이렇게 약식으로 비행기를 타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꼭 해봐야 할 일: Cow Wreck Bay나 Pomato Point에서 해수욕 즐기기, Flamingo Pond Lookout에서 새 관찰하기, 다양한 수상 스포츠 즐기기, 극한의 한적함에 빠져 보기.

날씨/방문 최적기: 겨울 기준 매일 20~30도로 따뜻하며, 여름에도 25~32도로 크게 더워지지 않음. 7월~11월 우기 및 12~1월 성수기 제외 시, 2~6월이 방문 최적기.

위치: 카리브해 북부 소앤틸리스 제도 (Lesser Antilles) 및 리워드 제도 (Leeward Islands) 에 속하며, 토르톨라 섬 북동쪽 약 35km에 위치.

시간대: 대서양 표준시 (한국보다 13시간 느림). DST (서머타임) 제도 없음.

항공편: 토르톨라 섬에서 월/수/금 07:00와 15:30에 아네가다행 페리 운행 (탑승 시간은 75분 선). 한편 North Eastern Caribbean Airline (+1-284-346-5821) 에서 토르톨라 공항 (EIS) 에서 아네가다 공항 (NGD) 까지 직항편을 운항할 수도 있으니 참고. 토르톨라 공항까지는 산후안 (SJU), 세인트 토머스 (STT), 산토 도밍고 (SDQ), 신트 마르턴 (SXM), 안티가 (ANU) 등지에서 각각 하루 1~6편 정도 직항편 운항 (비행 시간은 0.5~1.5시간 선). 그리고 이들 공항까지는 뉴욕, 애틀랜타, 댈러스, 워싱턴, 보스턴,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한국발 주요 행선지에서 직항편 이용이 가능 (비행 시간은 2~5시간 남짓)*.

입국 요건: 영국령 버진 제도는 (당연히) 영국령이며, 대한민국 국민은 무비자 입국 가능 (최장 30일이라 하나, 항공권/숙박 등 여행 계획에 맞게 체류 기간 부여하니 유의).

화폐 및 여행 경비: 공식 화폐로 미 달러를 채택하고 있어 별도 환전 불필요. 호텔 등 일부 매장 신용카드 사용 가능하나, 사용 불가한 곳도 많고 섬에 ATM도 없으니 충분한 현금 소지 권장.

언어: 영어가 공용어로 영어 의사 소통 문제 없으나, 현지인 간에는 Creole (현지어) 종종 사용.

교통: 생각보다 섬이 작지 않아 (섬 종단 거리 15km 정도) 근거리 이동 외 택시나 렌터카 이용 필수. 택시 요금은 거리에 따라 다르며, 페리 터미널 기준 Cow Wreck Bay와 공항은 10~15달러 선, Loblolly Bay는 ~20달러 선. 렌터카는 하루 85~125달러 선이나, 영국령인 관계로 좌측 통행이므로 운전에 자신 없는 경우 택시를 추천. 아울러 소로나 해변 근처에서는 바퀴가 모래에 빠질 수 있으니 유의. 자세한 정보는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관청으로 (https://www.bvitourism.com/search/results?cf%5B%5D=7&cf%5B%5D=61).

숙박: 호텔은 Anegada Beach Club과 Anegada Reef Hotel 정도이며, 그 외 빌라 렌트도 가능. 대부분 일 250~400달러 선으로 다소 비싼 편. 자세한 정보는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으로 (https://www.bvitourism.com/search/results?cf%5B%5D=6&cf%5B%5D=2).

식당/바: 해안 도로를 따라 식당이 여럿 있으며, 대부분 현지 요리를 제공. Sid's Pomato Point, Anegada Beach Club, Lobster Trap, Big Bamboo 등을 추천. 자세한 정보는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으로 (https://www.bvitourism.com/search/results?cf%5B%5D=6&cf%5B%5D=16).

전압/콘센트: 110V/60Hz에 플러그 타입 A/B 사용 (즉, 미국과 동일). 따라서 대부분 한국 전자기기의 경우 여행용 어댑터 필요.

국제전화 국가 번호: +1-284.

주요 연락처: 긴급전화 (경찰 311, 의료 911), 영국령 버진 제도 관광청 (+1-284-852-6020), 주영국 대한민국 대사관 (+44-20-7227-5500), 주도미니카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 (+1-809-482-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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